이 사건 회사원 J씨는 지난해 3월 서울 올림픽공원 노상에서 음주운전으로 차량 2대를 잇따라 들이받아 피해자들에게 각각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히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돼 서울동부지법에서 벌금 1천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J씨는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벌금 1천만원은 피고인의 경제적 처지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형벌”이라며 “경제적 파산상태를 참작해 차라리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를 선고해 달라”고 서울동부지법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 불이익변경금지 규정은 사법권 독립의 내용인 법관의 ‘양형결정권’ 침해
법원도 J씨의 딱한 사정으로 고심하기는 마찬가지.
아울러 검사의 약식명령 청구에 의해 일단 약식명령이 고지되면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더라도 법관은 불이익변경금지 규정에 의해 부득이 벌금형을 선택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은 헌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사법권 독립에 의한 내용인 법관의 ‘양형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작년 9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게 된다.
이 사건과 함께 병합 처리된 관세법 위반자 E씨도 2003년 4월 석재를 수입하면서 실제 거래대금보다 적은 금액을 세관에 신고하는 등의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벌금 4천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E씨도 벌금형보다 징역형 및 집행유예를 선고해 달라며 부산지법에 정식재판을 청구하면서 위헌제청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2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 헌재 “피고인 재판 받을 권리 보장…법관 양형결정권 침해 아니다”
헌재는 또 “집행유예가 선고되더라도 형의 본질이 변하지 않으며 집행유예기간 중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을 경우 언제든지 자유형의 집행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점을 살펴보면 징역형 및 집행유예의 형이 벌금형에 비해 반드시 경한 처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양형결정권과 관련, 헌재는 “어떤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고 어떻게 처벌할지 여부의 권한은 국회에 부여돼 있고 그에 대한 광범위한 입법재량 내지 형성의 자유가 인정되고 있으므로 형벌에 대한 입법자의 입법정책적 결단은 기본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따라서 법관에게 주어진 양형권한도 입법자가 만든 법률에 규정돼 있는 내용과 방법에 따라 재판을 통해 형벌을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검사의 약식명령청구사안이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은 직권으로 사건을 넘겨 재판절차를 진행시킬 수 있고, 이 재판절차에서 법관이 자유롭게 형량을 결정할 수 있는 점들을 종합할 때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해 법관의 양형결정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