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개혁 - 법원행정처의 혁파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기사입력:2005-06-08 12:58:12
한상희 건국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는 8일 <로이슈>에 특별 기고한 칼럼에서 “최근 사법개혁 논의는 지나치게 계층화하고 중앙집권화한 법관인사체계에 대해 소장 법관들이 가열찬 비판을 퍼부음으로써 촉발됐지만 어느 순간 사법개혁의 주도권이 개혁 강박증에 휩싸인 청와대의 관성을 제대로 포착한 대법원의 사법관료들에 의해 포획당한 형태가 됐다”고 비판했다.

로이슈는 한상희 교수의 법원개혁에 대한 기고 글 전문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 편집자 주 -

법원의 개혁 - 법원행정처의 혁파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1. 아젠다

대체로 사법개혁이라 할 때 그 개혁의 대상은 크게 법원-사법부의 개혁과 검찰·법무의 개혁, 그리고 법조의 개혁으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고 법학교육의 개혁은 상당 부분 이 3자의 개혁을 위한 하나의 고리로서 혹은 그 과정중의 하나로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실제 국민들의 법적 요구를 억압하고 질곡에 빠뜨려 온 사법권력의 폐해를 질타하면서도, 정작 그 중심에서 종국적인 권력의지를 법의 이름으로 가공하고 포장함으로써 권위주의적 통치과정과 개발독재의 경제억압을 그대로 정당화시켜 왔던 법원에 대한 비판과 그 본원적 혁신을 요구하는 개혁의 기치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사스런’ 검찰의 정체가 드러나고 이제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드높아 가면서 검찰권력이 조금씩이나마 걷히는 가운데, 그 잉여의 권력이 슬그머니 새로운 권력집단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한다는 데에서 우리는 무한히 당황하게 된다. 숫자의 증가로 인한 변호사권력의 상대적 약화와 국민적 견제로 인한 검찰권력의 상대적 약화가 역으로 법원권력의 절대적 강화를 야기하게 되면서 법원은 지금은 또다른 레비아단으로 거듭 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참여정부의 개혁아젠다로 제시되었던 사법개혁이 1년여의 논의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왜곡되다가 이제 파행으로까지 나아가는 양상은 이런 법원의 권력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준다. 원래 최근의 사법개혁논의는 지나치게 계층화하고 중앙집권화한 법관인사체계에 대하여 소장법관들이 가열찬 비판을 퍼부음으로써 촉발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이 사법개혁의 주도권이 개혁강박증에 휩싸인 청와대의 관성을 제대로 포착한 대법원/법원행정처의 사법관료들에 의하여 포획당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 사법개혁의 애초의 시도와는 관계없이, 검찰이나 군사법체계 등의 약점을 유효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법원의 사법관료들은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이들에 대한 비난으로 되돌려 놓고, 정작 사법개혁의 대상이었던 법원은 오히려 사법개혁의 주체로서 의기양양하게 부활하게 되는 이상한 가역반응의 양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2. 사법관료권력?

대체로 사법부의 개혁을 논의하는 경우 그 주된 과제는 사법의 민주화와 사법의 독립을 향해 있다. 그리고 전자는 사법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의 문제로,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사라진’ 현재의 시점에서 새로이 부각되는 후자의 문제는 더 이상 “정치권력 v. 사법권력”의 구도가 아니라 “사법관료권력 v. 법관권력”의 문제로 정리된다.

일제이래 우리의 법원은 관료적 폐쇄성을 바탕으로 하는 계층구조로 일관되어 왔다. 법관은 고시에 합격한 어린 영재들로 충당되며(소위 ‘순혈주의’) 이들은 법조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그 연륜과 공적을 바탕으로 하는 승진의 사다리 속에서 구축하여 왔다(계층제적 관료주의). 그래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젊은 법관들을 계층구조속에 편입시키면서 연공서열에 의거한 승진을 미끼로, 법률 이외의 그 어떠한 가치나 이념도 법판단의 준거로 삼지 못하게 세뇌시킨다.

한편에서는 부장판사가 그가 ‘데리고 있는’ 배석판사들에게 자신의 법기술을 복제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법-고법-대법원에 이르는 3심구조가 이 계층구조와 맞물리면서 대법원의 법판단이 하등의 회의도 없이 그대로 하급법원의 법판단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법부는 관료적 형식주의를 법추론의 실체로 오인하면서 모든 법판단의 기준을 전체로서 통일된 법원의 법의식에만 한정하는 경직성을 보이면서,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없이 단일한 색깔로 가득찬, 유례없는 ‘모범생 집단’으로 순화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법관의 계층구조는 사법의 민주화에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예비판사, 평판사, 부장판사, 고법부장판사 등, 공식·비공식으로 세분화된 서열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법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현재의 사법구조에서는, 강력한 중앙통제권을 가지는 대법원의 의중을 관찰하는 법관의 ‘닫힌 시선’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여기서 소송당사자는 물론 시민사회의 법감정 또한 손쉽게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 과정에서 검사동일체식의, 사실상의 ‘법원동일체의 현실’이 보장되고, 혁신을 저어하는 고급법관들의 폐쇄적 사고를 그대로 추종하는 ‘젊은 법관’들의 집단무의식이 구축되고 그를 통하여 일반대중의 정의감정은 물론 사회의 형평감까지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무소불위의 법관들이 양산되게 만드는 것이다.

3. 법원행정처: 사법 레비아단

이렇게 법관계층제의 문제, 인사의 문제 등 거의 대부분 우리 사법부가 가지는 개선의 요청들이 유효하게 좌절되는 기제가 바로 법원행정처이다. 이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좌하는 업무의 수준을 넘어 스스로가 법관에 대한 감시·감독의 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국의 법관과 그 결과로서의 전국의 재판을 평균화·획일화하는 거대법관이 되어 버렸다.

특히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과 같은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의 법관들에 대한 인사나 그 재판관련정책들을 통할하는 중추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사법정책연구실은 단순한 연구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써 전국의 법관들이 준수하여야 할 각종의 행위준칙이나 정책규범들을 형성하는, 집행기능의 전단계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와 명분에서건 이러한 거대조직으로서의 법원행정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독립이 강조되는 사법의 기능에 이러한 기획조정의 업무가 필요없을 뿐 아니라, 법관의 인사 역시 중앙의 한 부서가 하나의 기준으로써 일괄처리하는 방식은 사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각종의 사법정책연구는 별도의 연구소에서 할 일이지 그것이 인사와 기획조정의 기능을 가지는 법원행정처의 내부조직으로 수행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능들이 대법관의 통제하에 있는 법원행정처에 집중되어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바로 이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법관은 하나의 법관으로 변질시키며, 이를 통하여 스스로 거대한 사법 레비아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는 기획조정실, 사법정책연구실, 인사관리실외에 총무국 등 4개국·4개심의(담당)관·13개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실장, 국장, 심의관·담당관 등 주요보직은 모두 판사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해 놓고 있으며, 이에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도 주요한 보직은 모두 판사로 임용하고 있다. 즉, 법관이 아닌 법원행정관료로서 법관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에 총 65명의 정원을 가진 재판연구관을 두게 한 제도와 엇물리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의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이러한 구조는 각급의 법관(주로 부장판사 승진전의 판사, 중견급 부장판사, 그리고 고법부장 등)을 법원행정조직에 편입시킴으로써 그들을 순치하는 장치를 구축한다. 재판연구관제도는 그 대표적인 예로, 10년 정도의 경력이 되는 부장판사 승진 직전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대법원이 선호하는 법적 지향을 하향전달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오히려 법관들을 관료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일부의 (엘리트) 법관을 선발하고 이들에 대하여 전체 사법체계를 통할하는 훈련을 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미래의 법원관리자를 양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중앙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인사나 기획, 정책연구 등을 중견의 법관들이 장악하게 함으로써 그 행정과정의 결과들이 하급법원의 법관들에 의하여 정당한 것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후자의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을 형성하기 조차 한다. 즉, 그것은 사법부 내에 일종의 inner circle을 형성하게 하고 이 소수의 중앙이 전체로서의 사법부를 유효하게 지배하도록 만드는 교묘한 권력통제의 장치들이 구축되도록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얼마전 참여연대가 조사한 “1970년대 이후 대법관 임명실태”(사법감시 제24호, 2005.3)이다. 이에 의하면 법원행정처가 설립된 이래 23대에 이르는 법원행정처 차장 중 대법관으로 ‘승진’된 법관이 17명(73.9%)이며 헌법재판관 2명, 고법원장 2명, 지법원장 및 사법연수원장 각1명으로 전체가 한 명의 예외나 탈락도 없이 모두 상급의 직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나름으로 중요한 직책을 확보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래 대법관으로 임명된 61명의 법관(검사·변호사출신자 제외) 중에서 법원행정처의 고위직을 맡은 적이 있는 법관이 23명으로 약 40%에 이르고 있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대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수뇌부를 충원하기 위한 인력풀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법관으로서의 ‘승진’을 기회로 구래로부터 형성되어 온 내부적 불문율이 세습되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함을 의미한다. 즉, 사법부의 엘리트를 집합시키고 그 능력을 활용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그들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제2의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시야를 마치 경주마의 경우처럼 한 방향으로 고정시킨 법조관료만을 양성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법관들의 경력이다. 위의 대법관들중 법원에서 실제 사건을 담당하다가 대법관으로 승진임용된 경우는 겨우 3명(김영란 대전고법부장(대법관임명: 2004.8), 윤일영 서울고법 부장(1981.4), 안병수 서울고법부장(1973.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법관의 업무가 아니라 법원장 등 실질적인 행정업무에 종사하다가 대법관으로 승진되었다. 한마디로 우리의 법원은 대법원을 정점으로 극심한 관료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 와중에서 법관들은 법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제적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통할되어야 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게 되며 이를 행정적 시각에서 ‘처리’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형성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인드를 사법정책의 이름으로 전국적 통일기준으로 전화시키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개 선

실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거의 없는 이 일본식의 법원행정처제도는 재판연구관제도와 더불어 두드러진 관료조직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법원의 중앙집중화라는 반헌법적 현상을 초래한다. 또는 현재의 사법개혁논의 구도에서 보듯 그 권력이 기존의 사법부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을 향하고 그 지배력을 확장해 나가는, 그럼으로써 우리 사법권력의 이상비대화를 초래하는 주범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및 재판연구관제도의 개선방안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 기능의 중요부분을 해체하면 되기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전체의 예산안편성이나 일부의 기획의 업무를 제외하고는 대법원에 귀속된 행정처가 지방의 모든 법원까지 통제할 이유가 없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업무-재판업무를 보좌하는 기관이고 따라서 당해 법원에 특유하게 한정하여 그 업무만 수행하면 충분하다. 특히 법관의 인사의 문제를 관료조직으로서의 법원행정처가 일괄하여 관장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별도의 법관인사위원회 등의 기구에 귀속되어야 할 것이거나 아니면 사법의 지방분권과 관련하여 고등법원 정도에 설치되는 법관인사기구에서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사법정책연구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법정책의 연구는 법원행정처와 같은 관료조직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연수원과 같은 연구·교육의 기능을 위하여 특수하게 설치된 기관에서 수행하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재의 수준에서는 연구·교육의 기능을 가진 사법연수원은 정작 연구의 업무는 거의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연구관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그것이 굳이 판사로 충당되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둘째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법관 경력이 10년 정도되는 ‘중견’의 판사로 충당할 이유도 없다. 대법관의 능력을 보좌하기 위하여 연구·분석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법률학에 대하여 나름의 지식을 갖춘 연구자나 초임정도의 판사들로 임용되어도 그 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셋째, 그뿐 아니라 지금처럼 대법원장의 전보발령에 의하여 획일적으로 충원되어 모든 대법관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보좌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미국처럼 대법관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재판연구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보좌를 얻는 개별보좌관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 두 제도를 병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5. 그러나……

더불어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은 ‘승진’의 개념을 미끼로 하는 법관계층제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의 사법개혁논의의 구도는 아쉽게도 이러한 요청에는 전혀 무감각하다. 그 개혁의 아젠다가 철저하게 법원행정처에 의하여 장악당하고, 이를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뒷받침하고 있는 현재의 구도에서는 법원의 개혁에 관하여 오로지 대법원의 구성에 관한 문제, 혹은 하급심의 강화방안 등과 같은 주변적인 논의들만이, 그것도 법원의 입맛에만 맞추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법조3륜의 조합주의가 배타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청와대의 개혁강박증이 그 장단을 맞추고 있는 이 일그러진 현실에서 아마도 우리는 또다른 개혁논의의 장 혹은 어쩌면 현 정권의 개혁작업을 전면적으로 재평가하게 되는 그 어떤 시기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회의론이 차라리 유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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