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희 교수는 “사법개혁은 애초의 시도와는 관계없이 검찰이나 군사법체계 등의 약점을 유효 적절하게 포착한 법원의 사법관료들이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검찰 등에 대한 비난으로 되돌려 놓고, 정착 사법개혁의 대상이던 법원은 오히려 사법개혁의 주체로서 의기양양하게 부활하게 되는 이상한 가역반응의 양상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사법부를 겨냥했다.
한 교수는 “일제이래 우리의 법원은 관료적 폐쇄성을 바탕으로 하는 계층구조로 일관돼 왔다”며 “법원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젊은 법관들을 (연공서열이라는) 계층구조 속에 편입시키면서 연공서열에 의거한 승진을 미끼로 법률 이외의 그 어떤 가치나 이념도 법 판단의 준거로 삼지 못하게 세뇌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부장판사는 배석판사들에게 자신의 법 기술을 복제시키고, 또한 대법원의 법 판단이 그대로 하급법원의 법 판단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법원은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없이 단일한 색깔로 가득 찬 유례 없는 ‘모범생 집단’으로 순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예비판사-평판사-부장판사-고법부장판사 등 법관의 계층구조는 혁신을 저어하는 고급법관들의 폐쇄적 사고를 그대로 추종하는 젊은 법관들의 집단무의식이 구축되고, 그를 통해 일반대중의 정의 감정은 물론 사회의 형평감까지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무소불위의 법관들이 양산되게 만든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대표적인 예로 10년 정도의 경력이 되는 부장판사 등 승진 직전의 판사들을 재판연구관으로 두며, 대법원이 선호하는 법적 지향을 하향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어 법관들을 관료화시키고 있다”며 “일부 엘리트 법관을 선발하고 이들에 대해 전체 사법체계를 통할하는 훈련을 시킴으로써 미래의 법원관리자를 양성하는 한편 현재의 중앙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원행정처가 대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수뇌부를 충원하기 위한 인력풀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법관 승진이 세습되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하며, 법관들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제2의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예산안 편성이나 일부 기획 업무를 제외하고는 대법원에 귀속된 행정처가 지방의 모든 법원까지 통제할 이유가 없다”며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업무-재판업무를 보좌하는 기관인 만큼 당해 법원에 한정된 업무만 수행하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무엇보다 승진 개념을 미끼로 하는 법관계층 문제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하는데 현재의 사법개혁논의의 구도는 아쉽게도 이런 요청에 전혀 무감각하다”며 “사법개혁 아젠다가 철저하게 법원행정처에 의해 장악 당하고, 이를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뒷받침하는 현재의 구도에서는 법원개혁은 오로지 하급심 강화방안 등과 같은 주변적인 논의들만이 그것도 법원의 입맛에만 맞추어 제기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