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견법관의 글을 읽고

“새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의 시대적 소명을 완수할 사람이면 돼” 기사입력:2005-08-04 16:09:51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정진경 부장판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정진경 부장판사는 3일 대법원장 자격론과 관련,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최근 제시한 ‘전·현직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고 또한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만 대법원장이 임명돼야 한다’는 서울중앙지법의 A부장판사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새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의 시대적 소명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전·현직 대법관이든 아니든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래의 글은 정진경 부장판사가 <로이슈>에 특별기고한 글 전문이다.

다만, 정진경 부장판사가 3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로이슈>가 최초로 보도할 당시에 있었던 내용의 일부는 해당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요청에 따라 정 부장판사가 수정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독자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어느 중견법관의 글을 읽고>

1. 들어가는 말

지난주에는 휴가를 다녀왔고 이번 주에도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오늘 아침에야 어느 중견법관이 썼다는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라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평소에 사법개혁과 관련하여 많은 글을 써 온 저의 입장에서 새로운 대법원장의 임명과 관련하여 어찌 할 말이 없었겠습니까마는 현직 법관의 입장에서의 의견표명은 책임없는 시민단체들의 말과는 달리 헌법기관인 법관의 의견표명으로서 사법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의견표명을 자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글은 공개적으로 발표된 글인 듯 하고 외부에는 마치 위 글이 법관전체의 의견인 것으로 비춰질 소지도 있는 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 이분법적 사고

먼저 위 글은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고 현정권이 진보를 표방하여 집권한 세력으로서 입법부와 행정부를 자기세력으로 장악한 후 보수적인 사법부마저 진보세력으로 갈아치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위 글의 필자가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우리 법원의 태도를 보수나 진보로 일도양단하여 판단하기는 어렵고 또한 법원은 기존의 법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저는 스스로 원칙론자이고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원 내부에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대법원이 다양한 인적구성을 이루어 다양한 사고가 경쟁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어 판결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대법원장이 되든 정권의 구미에 맞추어 사법부를 장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현직 대법관이 아닌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재 우리 법관들의 수준을 고려하면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3. 대법원장의 역할

또한 위 글은 대법원장이 현재와 같은 절대적인 권한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법원장은 제1대법관이 아닌 사법부 전체의 수반으로서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판사전체에 대한 임명 보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법원장의 강대한 권한은 대통령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판사에 대한 임명권으로 사법부도 좌우하려고 할 때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었겠으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사법행정의 비대화와 판사의 관료화를 촉진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장보다 경력이 앞서는 대법관, 법원장보다 경력이 앞서는 법관이 존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새로운 대법원장은 스스로 자신이 가진 권한의 일부를 포기하여 하급법원장에게 위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만 대법원장이 임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4. 사법개혁의 방향

저는 우리 사법부가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되어 매우 잘 기능하고 있다는 위 글의 필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외국의 법조인을 만나보면 우리 사법부에 대하여 부러움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만 바뀌면 사법개혁에 관한 이야기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이유가 단순히 법원의 홍보부족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위 글의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공공기관 중 상대적으로 법원에 높은 신뢰를 보내면서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의 사법시스템은 대륙법계의 경력법관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 국민은 법치보다는 덕치를 이상으로 삼았던 과거의 영향으로 법관에게 단순한 사법관료 이상의 법창조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국민의 요구가 제가 정리한 것과 같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법개혁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전관예우의 폐단과 법관의 연소화문제는 경력법관제와는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국민적 불만의 해소는 현재의 사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5. 새로운 대법원장의 임무

사법개혁은 시대의 대세이고 이미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법조일원화 및 국민의 사법참여, 대법원의 정책법원화 등에 대하여는 기본적인 국민적 합의를 이룬 상태입니다.

새로운 대법원장은 이러한 국민적 합의에 따른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사법개혁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이를 이룰 수 있는 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위 글의 필자는 현재도 대법원이 주도하여 위와 같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법조일원화의 방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임용법관의 50%를 변호사 중에서 선임한다는 것은 그들이 기존의 경력법관시스템의 일부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법조일원화와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재판능력에 있어서 떨어지는 변호사 출신의 법관과 기존법관과의 대립과 갈등을 최고한도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또한 고등상고부와 관련한 최근의 합의는 대법원의 사건수를 1년에 1700건 정도로 늘여놓았는데 이는 정책법원의 방향과는 어긋난 것입니다.

어떠한 개혁이든 개혁은 기득권층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을 극복하고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면 개혁은 이해관계인들의 타협에 의하여 누더기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6. 개혁의 내부적 필요성

현재 사법부는 철저히 관료화되어 있고 사법행정이 사법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관에 대한 임명권과 보직권을 가진 대법원장과 그를 보좌하는 대법관급의 행정처장을 비롯한 법원내 최고위급 인사들이 행정을 맡고 있습니다.

판사들에게 재판은 노동이 된지 오래이고 매일매일 통계표를 들여다보며 사건과 그리고 동료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 법원내에서 스스로 헌법기관임을 자각하고 소신과 자부심을 갖고 재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미국에서 만난 법원관계자는 판사가 행정만을 해야 한다면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고 실제로 연방하급법원들의 행정을 총괄하는 행정처의 처장은 비즈니스를 전문으로 하는 비변호사였으며 연방대법원의 행정책임자도 2성의 군법무감출신으로서 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판사들이 재판보다는 법원행정처 근무를 원하고, 일반직들도 총무과나 등기, 호적을 선호하여 재판입회는 가장 인기없는 보직이 되어버렸습니다.

행정의 비대화와 인사제도의 합리화를 위해 도입한 근무평정제도는 판사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판사 개개인을 하나의 독립된 헌법기관이 아닌 사실상 거대한 법원관료조직의 일부로 왜소화시켰습니다.

7. 결어

새로운 대법원장은 저항을 극복하고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 사법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하여 사법행정이 재판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전현직 대법관이든 아니든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전현직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지만 전현직 대법관만이 대법원장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견해에도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2005. 8. 3. 고양지원에서 정진경 부장판사

◈ 정진경 부장판사 주요약력

정진경 부장판사는 63년 부산출신으로 관악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학교 로스쿨도 연수한 학구파.

89년 대전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수원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올해 2월부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식시황 〉

항목 현재가 전일대비
코스피 2,745.82 ▼9.29
코스닥 910.05 ▼1.20
코스피200 373.22 ▼0.86

가상화폐 시세 〉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100,812,000 ▼695,000
비트코인캐시 802,000 ▼500
비트코인골드 66,950 ▼150
이더리움 5,083,000 ▼19,000
이더리움클래식 46,320 ▼250
리플 885 ▼2
이오스 1,513 ▼8
퀀텀 6,620 ▼25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100,959,000 ▼572,000
이더리움 5,084,000 ▼26,000
이더리움클래식 46,390 ▼180
메탈 3,214 ▲15
리스크 2,892 ▲3
리플 886 ▼1
에이다 930 ▼1
스팀 486 ▼1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100,726,000 ▼649,000
비트코인캐시 803,500 ▲1,500
비트코인골드 67,050 ▼150
이더리움 5,080,000 ▼23,000
이더리움클래식 46,270 ▼90
리플 884 ▼2
퀀텀 6,670 ▲45
이오타 510 ▲9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