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하는 헌법재판소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
이미지 확대보기하야하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에서 탄핵결정을 함으로써 파면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다른 방법으로 대통령이 임기 전에 그만두게 하는 방법은 없다. 결국 대통령이 정치권이나 시민들의 하야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를 한 다음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을 통해 탄핵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일부 시민들이 섣불리 탄핵재판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성 때문이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행태로 봤을 때 쉽사리 탄핵 결정을 내리겠냐는 의구심이다.
탄핵(彈劾, impeachment)이란 형벌 또는 보통의 징계 절차로는 처벌하기 어려운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을 때, 국회가 해당 공무원을 탄핵의결(탄핵소추)하면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통해 그 공무원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제도다. 국회의 탄핵소추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해당 공무원을 탄핵할 것인지 아닌지를 재판하는 것이 탄핵심판이다. 탄핵제도는 고대 그리스ㆍ로마시대로부터 비롯하여 14세기 말 영국의 에드워드 3세(Edward Ⅲ) 때에 확립된 제도라 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제헌헌법에서부터 대통령 탄핵제도를 두고 있었다(제헌헌법 제46조). 다만 지금과는 달리 탄핵사건을 심판하기 위하여 법률로써 탄핵재판소를 설치하고, 탄핵재판소는 부통령이 재판장의 직무를 행하고 대법관 5인과 국회의원 5인이 심판관이 되는데, 다만, 대통령과 부통령을 심판할 때에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의 직무를 행하도록 하였다(제헌헌법 제47조).
현행헌법 제65조에서는 탄핵의 대상과 절차에 대해서 규정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을 경우 탄핵결정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그리고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결의되면 대통령은 임기를 스스로 그만두는 결정(하야)을 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 대통령이 탄핵결정을 받을 경우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공무원이 될 수 없게 되는데(헌법재판소법 제54조 제2항) 이러한 규정을 면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일반 법원과는 다르다. 법원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 법률적인 판단만을 해야 한다면 헌법재판소는 사회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일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분명 재판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사법적인 판단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당시의 정치권력의 성향에 맞게, 단지 다수 국민들의 뜻을 반영해서 결론을 내린다면 헌법재판소에 부여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헌법재판소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국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피해를 입은 소수 국민들이 거대한 권력과 싸우기 위해서 찾았을 때 그들을 외면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헌법재판소가 결정적으로 국민들의 뜻과 괴리되는 결정을 한 사건이 있다. 2004. 10. 21.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리면서(2004헌마554·566)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불문헌법이며, 수도이전은 헌법 개정 사안인데 국회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논리는 일반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웠다. 2014. 12. 19.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결정(2013헌다1), 더욱이 소속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시키는 결정은 의식 있는 국민들을 경악케 하였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사건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재판관들의 성향에 따르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재판관들이 임명권자의 뜻에 충실한 결정을 내려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의 헌법재판관은 야당에서 추천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수적인 성향이다. 일부 사건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인 결정을 내려왔고, 특히 정치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보수성향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에 있어서 9명의 재판관 중 8명이 찬성의견이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정당의 다양성이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의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정당해산을 결정하는 의식을 갖는 재판관들을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사실관계가 확정되지도 않았고 관련 사건이 대법원에서 재판중임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결정을 내렸으니 말이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헌법재판소 구성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하더라도 인용결정을 얻기 어렵고, 더욱이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탄핵소추를 기각하거나 결정을 미룰 수도(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는 제한이 있음. 헌법재판소법 제38조)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점을 염려한다.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충분히 공감이 간다. 헌법재판소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할 기회도 갖지 못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계속해서 보수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들의 성향도 반영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사회 주류에 편승하는 것이다. 재판관들 중에서는 다음 헌법재판소장을 염두에 두면서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지금까지 보여 왔던 것처럼 보수성향을 고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더욱이 최순실과 안종범, 그리고 정호서의 범죄혐의에 박근혜 대통령의 공범 또는 지시 가능성이 거론되는 마당에 아무리 보수적인 헌법재판관들이라 하더라도 탄핵심판을 기각할 명분도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것도 정치적 소용돌이를 빠져나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국가 기관은 신뢰성을 생명으로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면 신뢰성은 담보된다. 헌법재판소는 불행하게도 국민들로부터 그러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기본권 보장과 관련해서 일부 발전적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정치권력과 맞서는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권력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희생시킨 경우도 자주 있었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사건에 있어서는 사회적 다수인 보수세력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지금과 같은 정치적 혼란 정국에서 헌법재판소가 해야할 본질적인 역할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헌법재판소는 껄끄러운 탄핵재판이 자신들 손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갖는 사회조정자적 기능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는다면 더 이상 자신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자각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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