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이미지 확대보기중국 위(魏)나라의 조식(曹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된다. 조식은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다. 오질은 자가 계중(季重)이며, 재능과 학식이 출중하여 위나라에서 진위장군(震威將軍)을 지낸 다음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조식이 오질에게 보낸 편지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서, “술잔에 가득한 술이 앞에서 넘실거리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연주하면, 그대는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응시할 것이니, 한(漢) 고조(高祖)의 명신인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한 무제(武帝)의 명장인 위청(衛靑)과 곽거병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어찌 그대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左顧右眄,謂若無人,豈非吾子壯志哉)”라고 말한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孟子(맹자) 梁惠王篇(양혜왕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맹자가 齊宣王(제선왕)을 찾아가 일러 말했다. “왕의 신하가, 그의 처자를 친구에게 맡기고 楚(초)나라로 놀러갔다 돌아와 보니 그 친구가 처자를 굶주리고 추위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왕께서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믿고 맡긴 妻子(처자)를 굶주리게 한 그런 친구라면 당장 絶交(절교)를 해야 합니다.”, “士師[사사: 法務長官(법무장관)]가 그 부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장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四境(사경: 나라) 안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은 좌우를 돌아보며 다른 이야기를 하다. 딴전을 피우며 회피한 것이다(顧左右而言他, 고좌우이언타). 맹자가 역성혁명을 용인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를 동원해서 국정을 농단한 사건은 검찰수사로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등장하는, 국가의 사정라인이 마비되는, 언론을 숨죽이게 하면서 국민의 귀와 눈을 멀게 한, 기업을 동원해 재단설립목적으로 막대한 돈을 뜯어내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세계적인 토픽감이다. 여기서 취해야 할 야당의 자세는 명백하다.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든 아니면 탄핵심판을 통해서 파면을 하든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직을 그만두더라도 철저한 수사로 혐의를 밝혀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 국법질서의 준엄함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길이다.
이러한 원칙은 사건 초기에 취해야 할 야당의 기본적인 자세다. 그러나 야당은 대통령이 물러나도록 하야를 주장할 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혹시라도 탄핵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역풍이 불 것을 염려한 것이다. 거국내각을 주장했다가도, 책임총리를 주장했다가도,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하자고 했다가도 상대방이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한발 물러나나다. 정치적 계산을 해보니 손해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다. 정치적 계산을 통해서 자신이 앞세운 말도 슬그머니 거둬들이는 야당을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야당이 방향을 설정해서 올바른 길로 국민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촛불함성이 메아리치자 그 여론에 편승해서 정치적 실속을 챙기려 한다. 거센 여론에 밀려서 탄핵을 추진하고, 특별검사를 통한 수사를 진행한다. 늦어도 너무 늦다.
명백하게 탄핵의 대상이 된다면 곧바로 추진해야 한다. 여당의 반대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기 어렵더라도 절차를 밟아가고 나머지는 국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탄핵발의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국민들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염려 때문에 망설일 이유도 없다. 명백한 탄핵사유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기각한다면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의 폐지로 맞설 것이기 때문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한다. 정치적인 계산만 따지면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용기 있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옛말에 ‘망설이는 호랑이는 벌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망건 쓰다 장파한다’는 말도 있다. 이것저것 계산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고, 보수세력은 새로운 주자를 내세울 시간을 벌고, 국민들의 피로감을 불러오고, 도대체 야당에게 유리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여당의 태도는 분명하다. 국회에 공을 넘기면 여야의 대립, 야야의 대립으로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 그래서 시간을 상당히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것, 그 사이 보수진영이 대오를 정비해서 대선후보를 띄워 기회를 갖게 될 것을 기대한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좌고우면하는 것은 또다시 보수집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야당의 대선주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이 이해관계에 따라서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하고, 자신에게 조금 불리하더라도 당연히 그 길로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야권이 분열되어 있고, 야권잠룡들이 난립한 상태에서는 통일된 의견수렴이 어렵다. 어느 진영에, 그리고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길을 찾고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다.
<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