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민의 탄생, 촛불시위를 말하다

기사입력:2017-06-07 14:45:53
[로이슈 이가인 기자]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은 대규모 군중이 만들어낸 촛불시위의 물결에 휩싸였다. 2002년, 2004년, 2008년에 이어 네 번째로 번진 대규모 광장 촛불시위였다.



저자는 이런 이들의 존재를 20세기말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전경은 최루탄을 쏘지 않게 되고 학생운동권은 화염병을 몇 년 더 사용하다가 차츰 그만두게 된다. 이 상호 군축의 과정 속에서,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거리를 점거하는 경험을 한 대중이 만들어낸 게 대규모 광장 촛불시위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 경험이 축적되면서 2016년 겨울의 환희도 가능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저자는 다소 뜬금없게도 광장이란 물리적 공간으로 나온 이들이 각종 뉴미디어를 통해 정체화됐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들을 저자는 ‘미디어-시민’이라 부른다. 그들은 광장에 나왔지만, 예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또한 이들은 철저하게 ‘미디어-시민’이었다. 가령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백만 촛불 파도타기’ 광경을 생각해보자. 시위 현장에 있을 때 이 퍼포먼스는 큰 의미가 없다. 이 퍼포먼스는 공중시점의 카메라로 찍어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감동적이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는 세계인들도 찬탄했다.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은 사실상 자신의 눈 뿐 아니라 카메라의 눈으로 사태를 인지했다. 운동 세력이 설치한 무대와 스크린이 그 부분을 도왔다. 카메라에 잡히면 저렇게 멋있게 나올 거란 걸 추측하고 사람이 많은 빡빡한 공간에서 당장 자신의 눈으론 지각되지 않을 스펙터클을 위해 ‘파도타기’에 동참했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시위에 참여하면 실시간으로 몇 명이 모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위대 숫자가 충분치 않다 싶으면 친구들을 호출했다.”(527쪽)

말하자면 미디어를 이해하고, 그래서 본인이 미디어에 의해 어떻게 표현될 줄도 알며, 적극적인 미디어 실천을 하는 이들을 저자는 ‘미디어-시민’이라 부른다. 저자의 정의로는 “요즘 유행하는 말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본인의 견해가 미디어 지형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이해하며, 미디어의 견해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시와 항의를 할 줄 알고, 뉴미디어를 통한 개인의 미디어 실천까지 가능한 시민”(6쪽)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이들의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겠지만, 이 정의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변동시켰다는 것이 이 책의 인식이자 주제”(6~7쪽)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들이 어디서 나타났고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1세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미디어 운동과 연쇄적인 뉴미디어의 탄생과 영향이 그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디어 시민의 탄생》이란 이 책의 부제는 <21세기 미디어 운동의 흐름과 영향>이다. 저자는 이 기간 동안 닥쳐온 뉴미디어의 조류를 “PC통신(19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의 이동(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제로보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한 정치 토론 커뮤니티 성립(2000년~2004년), 개인 블로그 번성과 블로고스피어 생태계 구축(2003년~2007년), 취향 커뮤니티들의 정치·사회 게시판 신설(2008년), 트위터의 유행(2009년), 페이스북 유행(2010년대) 등”(7쪽)으로 정리한다. 이 기간 동안 시사 이슈를 주도하는 매체 역시 신문·잡지에서 지상파 방송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인터넷 포탈과 종편 방송 등으로 변했다. 저자는 이러한 미디어 변동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 및 사건과 어우러져 만들어낸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주체의 형성사를 보여주려고 한다.

저자의 미덕은 서술을 선악이분법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술은 ‘미디어 시민’이란 주체를 무작정 예찬하지 않으며, 그들이 제각기 만들어낸 선악이분법 서사의 뒷면을 보여준다. 저자는 “2016년 연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지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은, 정치에 갑자기 관심을 기울이게 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한 정치적 당파의 서사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편협함을 체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한두 달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십수 년의 역사를 간결하게 단순화한다. 일종의 인터넷제 ‘패스트푸드 이데올로기’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단순화의 풍랑에 휩쓸리는 것을 막는 데에 이러한 저술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9쪽)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미디어 시민’이 긍정적인 영향도 할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기의 여러 사례에서도 두 가지 양상이 모두 나타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간 단체, 즉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 사회에서 시민 개인과 국가 권력·자본 권력 사이 에 위치한 각종 매개 단체”(258쪽)라는 개념을 제시한 후, 미디어 시민이 정당·언론·노동조합 등 기존의 중간 단체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그 영향력을 단체를 황폐화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고, 긍정적인 역량을 강화하는데 협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 노동운동계나 진보진영과 민주정부 지지자들의 갈등을 건조하고 냉정하게 서술하면서 이 문제에 관한 주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간 단체와 ‘미디어 시민’ 모두 상생의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새로 출범한 민주정부와 그 지지자들, 그리고 정당인과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모두 동참해야 할 고민이다.

2016년 가을에 있었던 일은 긍정적인 사례였다. 겨울이 되어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거리로 튀어나오기 전, 10월 초 페이스북에선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다. 정부 여당이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쯤, 다른 문제보다도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집중추궁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였다. 언론인이었지만 한 명의 시민이기도 했던 이가 10월 7일에 한 제안을 통해 시작된 운동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시민들 사이에서 확산됐다. 명사들이 참여하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자 많은 언론은 이 해시태그를 달고 게이트 관련 기사를 홍보했다.

“이제 여론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언론 연합군이 SNS 시민들의 지원과 격려를 받으며 전진하기 시작했 다. 미디어 시민과 언론이라는 중간 단체가 협력하여 역사를 바꾼 소중한 사례의 출발이었다.”(509~510쪽)

《미디어 시민의 탄생》은 민주정부 3기를 출범시킨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 종사자와 시민들에게 쌍방의 고민을 던진다. 이제 언론은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언론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미디어 시민’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까다로운 소비자이면서, 금세 집결이 가능하고, 직접 미디어적 실천을 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마자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과 진보언론 사이에 있었던 분란은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그들을 이해할 필요성을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시민들 역시 이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취득하여 사회와 미디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정도로 과계몽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당파적이기도 한 자신들의 모습을 돌이킬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서사를 구성하는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각 당파는 그 사건들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통해 선악이분법을 꿰맨다. 이십여 년 동안 실제로 진행된 일들을 결코 짧이 않은 분량 속에서 접하면서 우리는 단순화의 뒤 편을 돌이키고, ‘21세기 미디어 운동’ 이후의 각자의 미디어 실천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한윤형은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2007년에는 <드라마틱>과 <판타스틱>의 객원 에디터였고 이후 <씨네21>,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자유기고했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현재 시대정신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가 있고, 함께 쓴 책으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메디치미디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웅진지식하우스)가 있다.《리영희 프리즘》(산책자), 《진보의 재탄생》(꾸리에), 《속물과 잉여》(지식공장소) 등의 책에도 한 꼭지씩 보탰다.

이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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