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더라인] 공론조사를 허하라

‘비전문가 결정’ 주장은 논의의 핵심 못 짚어 기사입력:2017-08-08 13:30:45
원자력발전소 두 기가 공사 중단 상태다.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얘기다.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공론조사를 실시하는 공론화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말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현재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가 공사 재개·중단 여부의 결정 주체는 아니며 자문기구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면서 다소 정리가 되는 모양새다.
논란 가운데 공론조사에 대한 무책임한 비난이 벌어진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원전에 관한 전문가 집단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이들 사이에서 공론조사를 ‘소수 비전문가에 의한 여론몰이식 의사결정’으로 몰아간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란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전문성에는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벗어나면 당연히 전문가가 아니다. 원자력발전소 전문가는 원전에 대해서만 전문가다. 그러니까 그는 ‘정치’에 대해선 비전문가에 해당한다. “내가 원자력발전 전문가이니 원전 문제는 내 의견이 더 옳다”고 말하려면 “당신이 정치학박사가 아닌데 공론조사는 왜 폄하합니까”란 말을 들었을 때 이견 없이 침묵해야 한다.

물론, 그러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므로 당연하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에서 연일 ‘탈원전’ 논리를 공박하고 ‘친원전’ 담론을 설파하는 것도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결정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선 여론이 자기 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론조사는 그 취지와 특성상 ‘여론몰이’와 멀리 있다. 숙의 민주주의 또는 심의 민주주의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공론을 형성해야 할 언론에서 공론조사 정도 되는 사회적 의사결정 방식을 ‘비전문가 결정’ 여섯 글자로 매도하는 풍경은 한국 언론만 봐서는 숙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숙의 민주주의 담론에선 공론조사와 같은 절차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나, 그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여론조사에 의한 의사결정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된다.
가령 지금부터 원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아무리 시키고 떠들어봐야 찬반 의견은 개개인의 정치적 선호도와 본인이 신뢰하는 정보루트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예쁘면 탈원전, 미우면 친원전이기 십상일 것이다. 무슨 신문을 보는지와 인터넷 사용시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녹색당원이면 죽어도 탈원전 입장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산업종사자라면 대체로 친원전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숙의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모델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정부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수준의 여러 관점의 다양한 정보들이 시민들에게 제공되고, 찬반양론을 들으면서 시민들끼리 토의를 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토의가 일정 기간 정도 실시된 이후에 다시 의견을 물어본다면 이전 생각이 바뀔 수 있고 그 바뀌거나 바뀌지 않은 의견들의 총합이 공동체와 개인에게 더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의견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시행된 사례들에서 사람들은 평소의 신념 내지 편견을 생각보다 쉽게 극복하고 다른 주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사례들에서 엘리트주의가 경멸하는 대중은 존재하지 않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토의를 거친 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어”라고 냉소할 수 있지만 한국에는 공론의 수준이 열악한 것이지 시민의 문해력이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등하진 않다. 그리고 공론의 수준을 열악하게 만드는 데엔 공론조사를 ‘비전문가 결정’ 여섯 글자로 축약해버리는 식으로 처신해온 언론 탓이 크다.

그러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구체적 문제는 실제로 숙의해서 판단할 수 있는 공론조사 모델을 만드는 것과,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공론조사의 결정을 본인들의 의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납득할 수 있느냐 등일 것이다. 보통은 그래서 연령/지역/계층 등을 고려해서 전체 시민의 축소판 모델로 만든다. 지금의 제도 역시 취지는 그렇다.

시행하다 보면 당연히 문제도 발생한다. 가령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정에서 숙의 민주주의 취지 제도를 활용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청하는 이들 중에서 추첨하여 선정했더니 모든 종류의 인권정책들을 ‘동성애 허용’으로 해석하는 개신교 일부 분파가 적극적으로 신청하여 들어와 혼란이 벌어졌다.
이 문제에 관해 비유하면 ‘무슨 정보가 제공되어도 절대 견해를 바꿀 리 만무한’ 녹색당원이나 원전산업 관계자들이 실제 인구비례보다 과도하게 대의되면 곤란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자고 말해야 한다. 가령 8월 6일자 <한국경제>에 기고한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의 경우 공론화위원회 산하에 팩트체크소위원회를 신설할 것을 제의했는데, 적어도 이 정도 수준에선 논의해야 말이 된다.

그러지 않고 공론조사를 ‘소수 비전문가에 의한 여론몰이식 의사결정’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소수 전문가와 언론에 의한, 본인들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을 위한 여론몰이’일 뿐이다.

앞서도 말했듯 전문가는 해당 문제에 관해서만 전문가다. 친원전만을 ‘산업’과 ‘기술’로 포장하지만 그렇게 치면 원전 해체도 산업이며 거기에도 기술력이 필요하다. 탈원전은 에너지정책 뿐 아니라 국가 산업정책의 구조를 바꾸는 커다란 문제일 것이다. 각종 기회비용을 서로 상이한 구조를 가지는 가치판단에 따라 재어봐야 할 이런 결정을 외주·위탁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은 없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어찌 공론위 따위가 결정하느냐고 몰아붙이려는가. 그럼 대통령 혼자 결정하고 밀어붙이면 될까. 그러면 또 독선적이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의 공약실행을 비판할 땐 “이 공약으로 당선된 정부인데 그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대선불복이다”라고 말했던 이들이 “5년짜리 정부가 국가중대지사를 결정하나”라며 한입으로 두말한다. 탈원전은 민주당 대선공약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삼으려고 하는가. 그러려면 공론위원회에 참여하는 시민 규모를 더 늘리자고 하거나, 논의 기간을 더 길게 잡자고 말하라. 그도 싫으면 전 국민이 삼 개월 동안 노동시간 감축하고 다같이 ‘숙의 민주주의’하자고 말하라. 축소판을 믿지 못하겠다면 전체를 다 실험해보는 수밖에 답이 없다.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을까. 대의민주주의에 수반되는 최소한의 비용(선거나 국회의원 세비 보좌진 월급 등등)조차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감내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공론위의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를 걸면 어떡하나. 이보다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비용이 더 커질 뿐이다. 아마도 민주주의자들은 그 ‘더 큰 비용’ 역시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을 텐데, 성장주의자들은 이에 동의할 수 있을까?

탈원전에 대한 여러 가지 맥락적 우려들이 있다. 화력발전 감축과 탈원전을 동시에 하기는 어렵다는 설명,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발전이 어렵다는 설명, 기존 노후원전을 쓰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설명 등이다. 당연히 고려해봐야 하는 관점·주장·정보다. 공론화위에서도 고려될 것이다. 자신하는 것처럼 이쪽 입장이 그토록 압도적으로 합리적이라면 시민들이 설득될 가능성도 높다.

만약 아니라고 본다면, ‘이미 견해가 오염된 시민’이 공론화위 대다수를 차지할 거라고 본다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제도를 어떻게 짜야 하는지 제언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싫다면 그냥 무조건 니 말이 틀리고 내 말이 옳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인간의 판단력을 근본적으로 못 믿는 이들이 전문가 말을 믿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현실이 서글프다.

공론조사는 진행되어야 한다. 어쩌면 공론장 자체가 사실상 부재한 한국 사회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결정기구로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나온 이상 “실험적 제도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한다”란 반박도 불가능하다. 빈정대거나 냉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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