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에어컨 켜둔 방서 사망…저체온증 때문 아냐”

“사망원인 둘러싼 다툼 예견되는 경우 유족이 부검 통해 사망원인 밝혀야” 기사입력:2010-09-30 19:22:44
[로이슈=신종철 기자] 방문과 창문이 닫힌 밀폐된 방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자다 숨진 사건에서 사망원인이 에어컨에 의한 저체온증인지를 놓고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엇갈린 판단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반드시 에어컨에 의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 사건은 망인이 에어컨을 켜 놓고 잠을 자다가 사망했는데 달리 사망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이를 보험사고인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사망’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보험금이 걸린 이 사건에서 유족은 부검을 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은 사망원인을 둘러싼 다툼이 생길 것으로 예견되는 경우 유족이 보험회사 등 상대방에게 망인의 사망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 30대 여성 에어컨 틀어 놓은 방에서 자다 숨진 채 발견

J(여ㆍ35)씨는 2007년 9월 14일(금) 오후 1시경 공주시 자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J씨는 문과 창문이 닫힌 폐쇄된 방안의 침대에 누워 사망한 채로 있었고, 몸은 강직된 채 차가웠다. 방안에는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었고, 실내온도가 차가웠으며, 외부의 침입 흔적이나 타살이나 자살 등의 흔적은 없었다.

J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경찰은 검시결과 에어컨을 켜 놓고 잠을 자던 중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내사종결 처리했다.

앞서 J씨는 2006년 1월 H화재보험사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로 사망하면 5000만 원의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되, 사고가 금요일ㆍ토요일ㆍ법정공휴일 및 근로자의 날에 발생하면 5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질병에 의한 사망이면 5000만 원의 질병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보험계약에 따라 H보험사는 이듬해 10월 망인 J씨의 딸에게 질병사망보험금 50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자 J씨의 딸은 “폐쇄된 공간에서 에어컨을 켜둔 채 잠을 자던 중 저체온증으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 망인의 사망은 보험계약상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이므로, 상해사망보험금 5000만원과 금요일에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5000만 원 등 1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5000만 원을 요구했다.

그러자 H보험사는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사고로 볼 수 없어, 이미 지급한 질병사망보험금 외에 보험금 지급채무를 추가로 부담하지 않는다며 J씨의 딸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 1심 “에어컨에 의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

1심인 대전지법 홍성지원 민사5단독 강경표 판사는 지난해 3월 “망인이 에어컨을 켜둔 채 잠을 자던 중 저체온증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망인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고 인증할 증거가 없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 항소심 “중병 없고 타살과 자살 사정도 없어 저체온증 사망”

그러나 항소심인 대전지법 제1민사부(재판장 허용석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H보험사는 망인의 딸에게 보험금 5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망인이 사망 당시 중증 질환이 없어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타살이나 자살로 볼 만한 사정도 없어, 결국 망인은 에어컨으로 인한 저체온증 등과 같은 신체 외부에서 발생한 급격하고도 우연한 사고로 인해 사망한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에어컨 작동만으로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 없어”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30일 에어컨을 켜고 자다 숨진 J씨에 대한 상해사망보험금 청구가 부당하다며 H화재보험사가 J씨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상고심(2010다12241)에서 보험사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최근의 의학적 연구와 실험 결과에 의하면, 저체온증이란 인체의 심부 체온이 35°C 이하로 낮아지는 증상을 말하고 저체온증으로 사람이 사망에 이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심부체온이 8~10° 이상씩 낮아져야 하는데, 건강한 사람의 경우 단지 선풍기나 에어컨 작동에 따른 표면냉각만으로는 인체의 심부체온을 위와 같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낮출 수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선풍기나 에어컨은 산소를 소모하지도 않고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이 사람의 코와 입에 직접 맞닿더라도 호흡은 가능하기 때문에 폐쇄된 공간에서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 놓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산소 부족이나 호흡곤란 등으로 질식사할 가능성도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선풍기나 에어컨을 밀폐된 방에서 틀어 놓고 자면 사망한다는 믿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속설이며, 실제로 선풍기 또는 에어컨에 의해 사망한 법의학적 증례 보고는 세계적으로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점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또 “선풍기 또는 에어컨 등은 산소를 소모하지 않아 질식 상태를 초래할 수도 없으며, 코와 입에 바람이 직접 닿는다 하더라도 호흡이 가능하므로 공기 부족으로 질식한다는 것도 물리학적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상망 원인이 분명하지 않아 사망원인을 둘러싼 다툼이 생길 것으로 예견되는 경우에 망인의 유족이 보험회사 등 상대방에게 사망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증명 과정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의사의 사체검안만으로 망인의 사망원인을 밝힐 수 없었음에도 유족인 반대로 부검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원인을 밝히려는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유족에게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보다 더 유리하게 사망원인을 추정할 수는 없으므로, 부검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유족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건강한 사람의 경우 에어컨 작동만으로 저체온증에 의해 사망할 가능성이 없고, 달리 부검 등을 통해 사망의 원인이 명백히 밝혀지지도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망인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사망했다고 본 원심 판결을 잘못돼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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