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따르면 K는 여성을 납치한 후 몸값을 받아 돈을 마련하기로 마음먹고, 2010년 6월 16일 대구 수성구 일대를 돌아다니다 B(여)씨를 발견하고 강제로 승용차에 태우고 폭행으로 반항을 억압했다.
그러나 차문을 열고 도망친 B씨는 인근 아파트 경비원의 도움으로 112신고센터에 납치미수 사건이 발생했다고 신고했다. B씨는 사건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에게 자신이 K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한 정황에 대해 진술했다.
그런데 경찰관들은 납치미수 사건이 아닌 단순 상해사건으로 상부에 축소 보고했다. 대구 수성경찰서 경찰관은 축소보고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바로잡지 않은 채 단순 상해사건으로 취급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
납치미수 범행을 저질렀던 K는 일주일 뒤인 6월 23일 납치미수 범행 장소 인근에서 20대 여성 C씨를 유인해 승용차 조수석에 태워 폭행하고, 테이프로 손과 발을 묶어 반항을 억압한 후 뒷좌석 바닥에 C씨를 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했다.
K는 C씨를 강간하고 C씨의 부모에게 전화해 “딸을 인질로 데리고 있으니 12시까지 현금 6000만원을 C의 계좌로 송금하라”며 C씨의 몸값을 요구했다. C씨 부모는 이날 딸의 납치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수성경찰서는 C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위치추적을 실시하고 C씨 계좌를 부정계좌로 등록해 예금 지급이 정지되도록 하는 한편, C씨 통장에서 출금되면 경찰에 통보되도록 조치했다.
이후 C씨의 휴대전화 위치가 대구 달서구 일대로 파악되자 경찰은 광역수사대 4개팀 형사 29명을 배치했다.
K는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편의점 내의 현금지급기에서 C씨 현금카드로 30만원을 인출하고 인근 다른 은행에서 3회에 걸쳐 195만원을 인출했다.
이에 경찰은 현금지급기의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자료를 입수해 K의 인상착의를 파악하고, 용의자가 인근에 주차돼 있던 차량을 운전하고 다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경찰은 K의 차량을 미행했으나, 이를 눈치 챈 K가 승용차로 도주했다.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까지 동원돼 K를 추격했으나, 퇴근 시간대 혼잡한 교통으로 인해 검거하는데 실패했다.
한편, K는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C씨의 휴대폰을 이용해 C씨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를 수시로 했다. 이에 경찰은 휴대폰 위치추적을 통해 K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K가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 후 C씨 부모에게 전화해 ‘경찰에 신고했네, 쫓기고 있다. 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는 C씨의 휴대폰 전원을 꺼버려 더 이상 휴대폰 위치추적을 할 수가 없었다.
K는 경찰로부터 추격을 당하는 등 수사망이 좁혀오자 더 이상 자신을 알고 있는 C씨를 살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88고속도로를 통해 경남 거창군 도로에서 살해한 후 사체를 배수로 안에 유기했다.
뿐만 아니라 K는 이날 거창톨게이트를 통해 대구를 벗어나 거창군으로 갔다가 거창톨게이트, 화원톨게이트를 통해 다시 대구로 돌아왔으나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검문검색을 받지 않았다.
경찰은 6월 24일 대구에서 타시도로 연결되는 톨게이트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할 것을 지시하고, 수사본부를 설치해 용의자 및 용의차량 발견을 위한 일제 수색을 실시해 K의 주거지 인근에서 승용차를 발견하고, 잠복하던 중 K를 검거했다.
1심인 대구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권순탁 부장판사)는 2011년 10월 망인(C)의 유족이 살인범 K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10%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 K는 직접 불법행위자이므로, 망인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재판부는 “경찰공무원은 2010년 6월 16일자 납치미수사건에서부터 경미한 상해사건으로 다루는 바람에 K가 납치미수사건이 발생한 인근 지역에서 추가적인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할 기회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이어 “납치사건의 경우 인질의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한 경우여서 위험성의 정도가 매우 높으므로, 인질의 안전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최대한 신속하게 범인을 체포해야 하는데, 경찰의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와 부정계좌 통보결과에 의하면, K는 대구 달서구 호산동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편의점에서 2회 현금을 인출하고, 이곡동 은행에서 3회 현금을 인출하는 등 용의자가 달서구 일대를 장시간 배회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검거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용의차량으로 의심되는 차량에 대한 수색을 시도하면서도 도주로를 차단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기본적인 조치조차 없이 막무가내로 용의차량에 접근하다가 용의차량이 도주하게 하고, 용의차량이 도주한 후에는 예상 도주로를 차단하거나 검문ㆍ검색을 실시해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이 경찰공무원이 권한을 행사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합리성이 전혀 없어서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이로 인해 망인이 사망하는 결과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에 따라 망인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 대한민국 소속 경찰공무원은 피고 K의 범죄행위를 저지하지 못한 소극적인 잘못이 있는데 불과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책임비율을 10%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인 대구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최우식 부장판사)는 2013년 1월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1심 10%보다 높여 30%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대한민국) 소속 경찰관들에게 인정된 과실의 핵심은 범인인 K에 대한 감독의무의 소홀이 아니라 범인을 검거하지 못함으로써 피해자인 망인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통상적인 공동불법행위와는 구조를 달리하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의 책임비율을 전체 손해의 30%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납치범에게 살해된 피해자 가족이 검거에 실패한 경찰을 문제 삼아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30%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인질납치범인 K가 운전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승용차를 발견하고 검문하려는 과정에서 용의자의 도주 위험에 대해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에게 발생한 피해의 심각성 및 절박한 정도, 그 상황에서 요구되는 경찰관의 초동조치 및 주의의무의 정도, 추가적 범행의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 등에 비추어 현저하게 불합리한 것으로서 위법하므로, 피고는 K와 연대해 경찰관들의 직무집행상 과실로 말미암아 피해자 및 유족인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손해배상책임 제한과 관련해 재판부는 “국가가 소속 경찰관의 직무집행상의 과실로 말미암아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에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당해 직무집행에서 요구되는 경찰관의 주의의무의 내용과 성격, 당해 경찰관의 주의의무 위반의 경위 및 주의의무 위반행위의 태양, 피해자의 손해 발생 및 확대에 관여된 객관적인 사정이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해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추어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의 책임감경사유에 관한 원심의 사실인정이나 피고의 책임감경비율에 관한 원심의 판단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공동불법행위의 손해배상책임 및 책임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며 국가에 30%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