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유예는 범행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2년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는 2012년 10월 8일 오후 4시 54분경 자신의 휴대폰으로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다.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전화를 받던 최필립 이사장은 문화방송(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등이 찾아오자 최성진 기자와의 통화를 마치고, 그곳 탁자 위에 휴대폰을 놓아둔 채로 이진숙 본부장 등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최필립 이사장은 휴대폰의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최성진 기자와의 휴대폰 연결 상태가 유지됐다. 당시 최 기자는 휴대폰에 있는 통화녹음 기능을 이용해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 등의 대화내용을 몰래 청취했다.
최성진 기자는 이같이 청취하거나 녹음한 내용을 바탕으로 5일 뒤인 10월 13일 한겨레신문에 “최OO의 비밀회동”이라는 제목으로 대화 내용을 실명으로 보도하고, 10월 15일 “최OO-MBC 비밀회동 파장, 10월 8일 정수장학회 비밀회동대화록”이라는 제목으로 대화내용을 상세한 녹취록 형태로 보도했다.
이에 최필립 이사장이 고소했고, 검찰은 최성진 기자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하지 않고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청취ㆍ녹음하고, 그 대화내용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성용 판사 2013년 8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게 징역 4월 및 자격정지 1년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성용 판사는 “피고인은 대화 청취를 시작할 당시 대화 당사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을 넘어 그들이 나눌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까지는 알지 못한 채 단지 보도할 만한 자료가 있는지 탐색하는 차원에서 타인의 대화를 불법적으로 청취하려 했던 것으로 인정된다”며 “청취 중간에 공적 관심사에 관련된 보도할 만한 가치 있는 내용이 있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가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선고유예에 대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피고인에게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소사실 중 녹음 및 공개에 의한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성용 판사는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이 사건 대화를 녹음한 것은 공개되지 안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범죄의 실행행위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의 녹음이 적법하게 평가되는 이상 녹음에 의해 알게 된 내용을 보도한 행위는 법률이 금지하는 불법 녹음물의 공개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안승호 부장판사)는 2013년 11월 최성진 기자에 대해 “청취 녹음 및 공개행위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공소사실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특정 후보자와의 관계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MBC와 부산일보의 지분을 매각해 반값등록금 등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될 여지도 있을 수 있고, 정수장학회가 주도적으로 MBC의 지분 매각 계획을 마련해 그 계획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MBC가 그 지분 매각 절차와 매각 발표안을 마련해 와 이를 정수장학회에 보고하는 것이어서 왜 MBC가 그 지분매각절차 및 계획발표에 관여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부산일보의 매수제안을 했던 사람들의 의도 역시 언론을 사유화하는 것으로 보여, 이러한 내용들이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ㆍ사회성을 갖춘 공적인 관심사항에 해당한다고 보이기는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불법 녹음된 대화내용을 실명과 함께 그대로 공개해야 할 만큼 대화내용이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로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화를 청취할 당시 우연히 듣게 되었지만 최필립의 대화상대방이 MBC 기획홍보본부장 이진숙이고, 전략기획부장이라는 사정을 알았고, 대화를 들으면서 최필립, 이진숙 등에게 자신이 대화를 듣는다는 사정을 고지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허가도 받지 않은 이상, 이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청취, 녹음해 불법적인 자료를 취득하는데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 대화의 내용이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하고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대화 당사자들에 대해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의 공개로 인한 불이익의 감수를 요구할 수 없다”며 “또한 대화 당사자들이 소위 공적 인물로서 통상인에 비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 개인 간의 대화가 불법 감청 내지 녹음되고 공개될 것이라는 염려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권리까지 쉽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화를 청취ㆍ녹음하게 된 경위, 보도의 목적과 내용, 방법 등 보도와 관련된 모든 사정을 종합해 보면, 보도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이 사건 대화를 공개한 행위 역시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결국 피고인이 대화를 청취ㆍ녹음하고 이를 공개한 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만약 이러한 행위가 정당행위로서 허용된다고 한다면 장차 언론기관이 우연히 사인간의 대화를 청취하게 된 것을 기화로 계속 그 내용을 청취ㆍ녹음한 후 소기의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를 취사선택해 그 내용을 공개하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사실상 이를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는 부당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짚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2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기자의 상고심에서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일반 공중이 알 수 있도록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발언을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통비법 제3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인은 이 사건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은 제3자이므로, 통화연결상태에 있는 휴대폰을 이용해 대화를 청취ㆍ녹음하는 행위는 작위에 의한 통비법 제3조의 위반행위로서 처벌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관련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원심이 피고인이 대화를 청취 및 녹음한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할 수 없고, ‘공개’ 행위 역시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