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민주당이 이번 정부에선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보인다”고 평했다. 실수는 되도록 피해야 하지만, 시민의 반응을 빠르게 헤아려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 역시 중요하다.
같은 날인 11일 매주 금요일 발표되는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78%로 나타났다(지난 8∼10일 전국 성인 1002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95% 신뢰 수준, 표본오차 ±3.1% 포인트). 취임 100일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상당한 지지율이다. 역대로 쳐도 김영삼 정부 다음이다.
그간의 상황을 볼 때, 문재인 정부는 대체로 75% 이상의 지지를 얻기 위한 행보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전임 박근혜 정부가 갤럽조사 30% 지지율의 벽만 지키려 한다는 해석이 돌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만 붕괴하지 않으면 국정원·검찰 등 사정기관을 통해 여당을 통제하고, 그 거대여당을 통해 국회의 반발을 무력화시키면서 버틸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임기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통했지만, 그 결과 각기 성향이 다른 반대파들이 결집하였고 끝내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파행이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상황은 사뭇 달라 전임자의 노선을 시도할 수도 없다. 여소야대이기에 야당이 반발할 때 여론 지지 없이는 돌파가 안 된다. 사정기관은 민주정부와 친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는 그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개혁하는 중이다.
지지층의 성향도 다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에 대한 보수파 유권자들의 애정이 맹목이었다면, 아무리 팬덤정치를 논할지라도 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개혁을 수행해줄 정치인에 대한 믿음’으로 다소 도구적인 데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혁이 지속되어야 지지가 계속된다. 박기영 교수 임명 이후 벌어진 일이 그 좋은 예로, 대통령 지지율은 높았지만 지지자들까지 거센 반발을 하여 결국 청와대가 버티지 못했다.
취임 100일 무렵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높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초기 하나회 청산 등 거침없는 개혁행보로 높은 지지를 얻었으나 임기 후반의 지지율은 처참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가 갱신하기까지 역대 최저 지지율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취임 초기 지지율은 실현된 개혁과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적폐청산이나 개혁과제는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지난 100일 동안 지금의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한 많은 이슈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최저임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대책, 원자력발전소 등 에너지대책 문제, 건강보험 문제, 부자증세 등을 정부가 작심하고 던졌다. 하나같이 파급력이 크고 다른 추가적인 논의들을 불러오는 이슈들이다.
더구나 시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문제에 직결하는 것들이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이 힘겹게 원내 다수당이 된 후 던진 4대개혁 입법이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개혁 관련법, 사립학교법이었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대통령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단순한 과제들은 속도감 있게 처리하고, 크게 던진 민생 이슈 중 시민들의 지지율이 높은 것을 밀어붙인다. 박근혜가 ‘30%’ 유지하면서 권력을 유지했고 그 뒤에서 최순실이 이권추구에 골몰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에서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75%’ 지지선을 지키려고 한다. 전자가 치부와 보신을 위한 치졸한 수비였다면, 후자는 성공한 개혁과 정권재창출을 위한 장쾌한 공격이다.
민주당이 취하는 공세적 행보는 정의당을 곤경에 빠뜨렸다. 기껏 제도권에 적응하기 위해 순치된 면이 있는데, 그러한 자신들의 영역을 민주당이 잠식해버렸다. 이제 다시 민주당의 왼쪽 골목을 찾아볼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다루지 않는 의제를 제시해야 할 겐지 고민이 될 것이다. 정의당이 반대한 인사만 낙마했다며 ‘정의당 데스노트’란 말이 돌지만 이는 정의당 정체성을 제대로 살린 결과가 아니며 단지 진보적 촛불민심 조류에 발맞춘 결과다. 정의당 역시 야당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다.
반면 민주당 오른쪽에 있는 이들은 “문재인 정부 행보가 나라를 흔든다”고 성토하면서도 지리멸렬을 면치 못한다. 이런 와중에 고통스러운 것이 소위 ‘강남’으로 표상되는 수도권 중산층들이다. 이들 중에선 설령 보수정부 10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였다 해도 현재의 정부 정책 기조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래서 현재 강남은 무주공산이다. 지난 대선 강남을 포함한 수도권에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위를 하지 못했다. 자칭 ‘전투의 천재’인 홍준표 후보가 걸친 ‘트럼프-두테르테’ 의상은 홍 후보에게는 ‘내 몸에 딱 맞는 옷’이겠지만 강남 사람들에겐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모를 거적대기 같은 옷’이다. 보수가 아무리 좋다지만 천박하고 흉해보인다. 바른정당은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고, 국민의당은 내홍 중이라 강남을 공략할 정신이 없는데다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바른정당과 손을 잡을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시대’를 만들기 위한 키플레이어는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희정 지사는 이미 지난 민주당 경선 국면에서 사실상 ‘민주당 대통령’을 받아들여야 했던 중도·보수 유권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강남 등 수도권 중산층들이나 심지어는 대구·경북 유권자들에게도 안 지사는 ‘한 번쯤 지지해봤던 후보’다.
만약 임기가 끝나가는 안희정 지사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내년 보궐선거에서 의미있는 지역에 나와 당선되고 이후 민주당의 당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민주당 우파의 리더’가 된다면 어떨까. 그리되어 당내외적으로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대신 수도권 중산층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면 어떨까.
이번 갤럽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산·경남·울산, 이른바 PK지역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 비율은 82%나 된다. 호남의 90%에 이어 가장 높다. 문재인이 경남을 수복한 상황에서 안희정이 강남을 공략한다면 세 보수야당의 정권교체 전망은 사실상 사라진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속에 대한 피로감을 민주당 당내권력을 교체하면서 해소하는 식이 된다.
지금 시점에서 많이 나간 얘기지만, 이런 방식으로 ‘민주당의 시대’가 열릴 경우 그동안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걱정했던 ‘일본 자민당식의 1.5당 체제’의 주인공은 민주당이 될 수도 있다. 내용적으로는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연정하여 안정적으로 개혁을 실시하는 독일식 연정모델 비슷한 것이 구현될 수 있다.
물론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3당으로선 이런 상황이 악몽이다.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시위로 인한 정권교체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과거처럼 보수파 유권자나 지역 유권자가 결국에는 자신들에게로 돌아오는 선택을 할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소멸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총선의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기회가 많이 남은 것이 아니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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