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민주당과 각 세워, 보수 흡수 못하면 존재감 잃을 수도
중도(中道)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길’이다. ‘양측의 가운데’라고 보면 된다. 영어에서도 중간 입장(middle way(between two extremes)으로 사용되거나 중간‧온건(moderation)의 뜻으로 쓰인다. moderator가 사회자나 조정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정치적으로 중도주의는 보수주의나 진보주의와 달리 연구와 논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양 극단의 대립을 완화하자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보수 성향은 주로 중산층 이상에서 나타나고 진보 성향은 대체로 서민층에서 발견된다. 중도 성향은 대략 중산서민층에서 자주 목격된다. 경제적으로 중도는 허리를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허리의 공간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중도의 설 자리도 더욱 좁아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중도의 자리가 거의 없다. 그나마 사회민주주의가 정착한 유럽에서 중도 확장의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중도를 표방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3개월만에 지지율이 급락 40%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중도는 정치적 실체를 확보하기 어렵다.
안철수, 청년‧호남 지지기반 약화로 새 좌표 설정 불가피
안철수는 당 대표 당선 수락연설에서 중도개혁노선을 선언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선전포고에 준하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중도노선과 야당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안 대표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청년 ‧호남 대신 중도주의를 새로운 지지기반의 좌표로 재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안 대표의 지지기반이었던 청년과 호남의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서 제3의 후보로 21.0%를 득표하는 상당한 성과를 냈다. 5월 19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17.9%, 30대 18.0%, 40대 22.2%를 얻는데 그쳤다. 특히 19세/20대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13.2%, 심상정 정의당 12.7%와 차이가 거의 없었다. 호남에서도 광주 30.1%, 전남 30.7%, 전북 23.8%를 얻는데 그쳤다. 반면 수도권에서는 서울 22.9%, 인천 23.7%, 경기 22.7% 등으로 2위를 기록했다. 또 전국 평균 득표율이 21.0%를 고려하면 호남의 이탈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안 대표에게 더 뼈아픈 것은 호남과 청년이 쉽게 돌아오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이다. 호남은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가장 높고 주요 쟁점 현안에 대해서도 정부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안 대표가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울수록 호남의 이탈이 빨라질 수 있다. 청년도 문준용씨 제보조작 파문으로 회군(回軍)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35% 수준인 2040세대의 국민의당 지지율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중도는 살아 움직이는 것, 선거 시기에는 보수-진보로 분화
안 대표가 유력 정치인 중 가장 중도 이미지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안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충청권에서 20% 이상 득표했고 영남권에서도 15%를 넘었다. 안 대표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게다가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약화되면서 안 대표의 중도주의 선회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중도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촛불 민심으로 치러진 지난 대선은 이념 성향과 투표의 연관을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정논단에 대한 분노로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보자. 내일신문 여론조사에서 중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월에는 중도가 당시 여권 29.8%, 야권 45.5%(안+문)였다. 야권 단일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8월에는 여권 40.1%, 야권 37.5%로 격차가 좁혀졌다. 19대 총선이 열렸던 4월에도 중도는 당시 여권 30.7%, 야권 33.6%(안+문) 등으로 비슷하게 나뉘어졌다.
중도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중도는 평상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에 따라 지지후보나 정당을 밝히다. 그러나 선거가 임박하면 보수-진보로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분단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양극화도 심각하다. 이런 여건에서 국민은 선거가 없는 평시에 심리적으로 중도를 선호할 뿐이다. 따라서 안 대표의 중도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수 확장’ 또는 ‘보수 흡수’가 필요하다.
데이터앤리서치 엄경영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