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민주당은 어떻게 총선과 대선을 내줬나

[촛불 1주년과 미디어 시민⓶] ‘박근혜 시대’를 만들어낸 민주당의 오판 기사입력:2017-11-07 13:25:48
*촛불혁명 1주년이라 한다. 지난해 10월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본격적으로 점화된 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12월의 국회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올해 3월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어냈다. 1주년을 맞아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진행 중이다. 로이슈는 그중에서 ‘미디어 시민’이란 개념으로 지난 이십여 년을 반추한 한윤형 저 <미디어 시민의 탄생>의 후반부를 소개한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서 몰락까지를 다룬 3개장을 향후 9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20장 나꼼수와 종편, 2012년 대선과 박근혜 시대를 열다 (2)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나꼼수와 종편방송의 영향력은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2011년 12월 1일 개국된 종편은 TV조선이 개국 당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가진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자막에 깔 만큼 노골적으로 편향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와 함께, 나꼼수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했다. 정봉주가 실형을 받자 정봉주의 지역구에 대해 김용민의 공천이 이루어졌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야권연대의 과반승리를 예측했던 야권은 새누리당에게 과반의석인 152석을 허용했다. 김용민의 지역구 공천 이후 터진 십여 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의 ‘막말 파문’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었다. 그 영향이 얼마 정도였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훗날 민주당 관계자들은 수도권에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파문이 터진 후 수도권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한다. 선거 결과 서울에선 야권연대 당선자 숫자가 새누리당보다 두 배 많았으나(민주당+통합진보당: 30+2 vs 새누리당: 16), 인천·경기 지역에선 그 정도 차이를 벌리지 못했다(민주당+통합진보당: 35+2 vs 새누리당:27). 지역구도를 감안하면 수도권에서 그 이상의 차이를 벌렸어야 야권연대의 과반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나꼼수의 책임이었다기보다는 민주당의 전략부재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2012년 총선 직전 민주당은 시민사회 세력인 ‘혁신과 통합’이 만들어 낸 가설정당인 시민통합당과 당 대 당 통합을 하여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이는 나름의 혁신적인 시도이며 성과였지만, 온라인 참여는 장려하면서 지역 정당조직은 약화시킨 2천 년 이후의 흐름의 연장선상이기도 했다. 종편의 출범으로 인해 미디어 영역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느낀 민주당으로서는, 600만 청취자를 지녔다는 나꼼수의 대중성에 연연할 수밖에 없었다.

대선 정국에서도 민주당의 판단착오는 계속되었다. 결과적으로 검토해 보면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앞서는 시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당 선거캠프는 승리를 확신한 희한한 선거였다. 안철수와의 단일화 협상에서부터 삐걱거렸다. 2011년부터 ‘안철수 현상’의 중심이었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불과 대선 두 달 전인 10월 말까지도 문재인 후보보다 높았다. 단, 안철수 후보 지지율도 다자구도에서 1위가 되거나, 박근혜 후보와 박빙이 되는 2강1중 구도는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차츰 문재인 후보 지지율과 경합하는 1강2중 구도가 되면서 단일화 협상장에 나오게 됐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안철수 후보와는 2011년 청춘콘서트를 함께 하면서 익숙한 사이였다. 청춘콘서트는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이 안철수와 박경철 등을 섭외해서 치른 행사였는데, 당시 평화재단 이사장은 법륜스님이었고 평화교육원장이 윤여준이었다. 이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는 청년층을 향한 대중적인 영향력을 확인했고 ‘안철수 현상’이 발생하자 법륜스님과 윤여준 등은 여러 언론에서 안철수의 정계입문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받게 된다. 그랬던 윤 전 장관은 2011년 9월 문재인 후보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초빙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대선에서 별다른 역할은 하지 못했다. 그의 회고를 들어보자.

“민주당 선거대책위에 들어가서 보니 어떻게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의에서 돌아와서 ‘내가 보니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어요. 우선 고위 참모들이 모여서 하는 선거대책회의의 긴장도나 집중력, 또 논의되는 문제의 수준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시대정신연구소 엮음,《 반기문은 없다》, 시대정신연구소, 2016, 51쪽)

이 시기 인터넷에서 일군의 문재인 지지자들은 안철수가 ‘이명박의 세작(간첩)’이란 식의 흑색선전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부 지지자의 것이라 일축할 수 있었지만, 참여정부 시절 홍보수석을 맡았던 조기숙 교수 등도 동참했을 만큼 생각보다 큰 조류였다. 다행히 안철수 후보는 11월 초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의를 하고, 이에 대해 조기숙 교수 등은 트위터에서 사과를 한다. 그러나 단일화 협상 과정도 문제였다. 윤여준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일화 협상 대표가 정해지고 나서 저에게 ‘안철수가 어떤 사람이냐’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해 대답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물어보더군요. 자기들 나름대로 연구한 것이 있겠지 하고 지나갔습니다. 협상하는 것을 보니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을 때 ‘안철수를 승패의 구도 속으로 몰지 말라’고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에게 충고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몰고 가면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안철수는 나자빠질 것’이라고 말했어요. 달리 말해 게임을 안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안철수는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에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 승리가 확실하지 않은 게임은 아예 안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승패 구도로 몰지 말고 논리를 만들어서 ‘왜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고 개인에게도 명예가 되느냐를 가지고 설득하면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담아듣지를 않더군요. 할 수 없지 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그러고 나서 이틀 후에 긴급기자회견해서 안철수가 단일화 안 하고 사퇴한다고 하니 패닉 상태가 되더군요. 단일화 협상한다면서 전략도 없고 상대에 대한 연구, 분석도 없었어요. 안 될 때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없었던 것이지요.”(시대정신연구소 엮음,《 반기문은 없다》, 시대정신연구소, 2016, 52~53쪽)

인터넷에서 관측된 문재인 지지자들은 단순한 지지자가 아니라 일부 지식인과 여의도 사람들(의원실 보좌관 등등)과 결합하여 그들에게서 정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안철수 출마 선언 이후엔 ‘제3후보 지지율은 전례로 볼 때 거품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다(사실 1987년 이후의 직선제 대선의 전례는 당시 다섯 번 밖에 없었다), 지지율이 꺼지지 않자 앞서 말한 ‘안철수는 이명박의 세작’론을 반복했고, 단일화 협상에 들어가자 안철수 측이 얼마나 비열한 협상을 하고 있는지를 성토했다. 1997년의 김대중이 김종필을 설득하기 위해, 2002년의 노무현이 정몽준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떠한 양보와 협상, 승부를 펼쳤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 중 출마포기를 선언한 이후엔 다 이긴 것처럼 굴다가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안철수가 출마포기를 잘못된 방식으로 선언하고 충분히 돕지 않아 선거에서 패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안철수가 나갔으면 이겼을 거라고 말하는 안철수 측 사람들의 입장도 합리적이진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양측은 선거전의 측면에서도 준비가 덜 되어 있었으며, 미숙한 대응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점은 보지 않고 상대방 때문에 패배했다고 쌍방을 비난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보고 싶지 않다는 유권자 층도 당연히 존재했기 때문에, 반등의 흐름이 한 번은 왔다. 12월 10일 이후,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구간에서야 반등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12월 12일엔 국민통합위원장이 된 후 아무 일도 하지 못 했던 윤여준 전 장관의 찬조연설이 ‘빅히트’를 쳤다. 윤여준은 문재인이 애써 영입해온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군사정부에서 일했고 한나라당의 선거 기획을 짰던 사람이란 이유로 캠프에서 중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당시 문재인 후보의 리더십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윤여준은 갑자기 찬조연설이 결정되고 자신에게 원고가 왔는데, 그걸 급히 자신의 언어로 다시 쓰느라 퇴고도 하지 못하고 녹화에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찬조연설이 화제가 되자 민주당은 재방을 결정했다.

직전인 11일엔 민주당 의원들 몇 명이 몰려가 국정원 직원이 댓글 공작을 하는 현장을 덮쳤다. 해당 직원은 문을 걸어 잠그고 민주당이 자신을 감금했다고 주장하면서 35시간을 버티다가 나왔다. 압수된 컴퓨터를 받은 경찰은 수사를 하다가 대선을 사흘 앞둔 16일 밤 기습적으로 “댓글 흔적이 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시기 민주당은 지지율이 역전됐다고, ‘골든 크로스’를 말하고 있었다. 패배가 확정된 이후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국정원과 경찰에게 정권을 도둑맞았다’고 말하게 된다. 그들은 그 시기 이기고 있다고 확신했고, 선거 이후 부정선거에 대한 의문은 그래서 생겼다.

권력기관이 여당에게 줄 서는 상황은 분명 문제적이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가 ‘거의 이길 뻔했던’게 맞는지를 묻느냐면 의문이 많다. 훗날 문제가 된 ‘NLL 대화록’ 정국을 검토해 보면, 박근혜 측은 더 불리해질 경우 그 대화록을 2012년 대선에서 공개할 생각이었던 걸로 보인다. 실제론 김무성 의원이 부산 지역 유세에서 ‘NLL 대화록’ 일부분을 읽는 정도로 끝났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는 것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공정한 게임이었지만 민주당은 그 게임을 뚫고 이겨야만 했다. 그리고 국정원과 경찰을 개혁해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일부 친노 인사 2선 후퇴’ 등을 약속하면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는 자료가 내부에서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못했다. 2012년 총선을 통해 갑작스레 정치권 데뷔를 한 문재인 후보는 자신을 추대한 세력들을 확실히 제어하는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끝까지 착각을 했다.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공표 안 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이기고 있다’는 류의 자료가 끊임없이 돌고 공유됐다. 결과적으론 ‘가짜 뉴스’나 다름없었다. 선거 후 공표금지 기간의 여론조사를 기자들이 검토해 봤을 때, 백여 개 여론조사 중 문재인 후보가 약간이라도 앞선다고 나온 조사는 세 개뿐이었다고 한다. 돌던 자료 중에선 심지어 “공신력이 가장 탁월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 문재인이 앞선다”는 것도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봤을 때 그런 조사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상대측 정당 연구소 결과의 공신력을 근거로 내세운 웃지 못할 상황이 됐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있겠으나, 워낙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자신들도 실제로 이긴다고 생각하고 고무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당일에도 기자들에겐 “출구조사 결과 문재인이 앞선다”는 종류의 자료가 날아왔다. 역시 ‘가짜뉴스’였다. 중장년층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새누리당 측에서 만들어서 뿌렸다는 가설도 있었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는 탄생했다. 1577만표 대 1469만표. ‘87년 체제’ 이후 ‘최초의 과반대통령’을 만들어 낸 기록적인 양자대결이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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