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손을 잡게 된 이유는?

[촛불 1주년과 미디어 시민⓹] 후퇴한 조선일보와 뒤늦게 뛰어든 한겨레, 그리고 유례없는 동맹 제의 기사입력:2017-11-17 12:14:19
*촛불혁명 1주년이라 한다. 지난해 10월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본격적으로 점화된 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12월의 국회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올해 3월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어냈다. 1주년을 맞아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진행 중이다. 로이슈는 그중에서 ‘미디어 시민’이란 개념으로 지난 이십여 년을 반추한 한윤형 저 <미디어 시민의 탄생>의 후반부를 소개한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서 몰락까지를 다룬 3개장을 9회에 걸쳐 연재한다.

21장 SNS·언론 연합군, 박근혜를 쏘다 (2)

실제로 TV조선은 2016년 총선 전후를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정치적 편향성을 줄이기 위해 야당 성향 패널을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심의제재 건수가 뚜렷하게 감수한다. 그리고 이 시기 TV조선은 이진동 사회부장을 중심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그리고 최순실에 대한 집중취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TV조선은 총선이 끝난 지 석 달이 지난 2016년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에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업의 팔을 비틀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두 재단에 대한 모금을 강요했다는 의혹 보도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진동 부장은 취재 계기에 대해, “2014년 말 과거 최순실 씨의 측근이었던 고영태 씨가 찾아와 최 씨에 관해 여러 얘기를 했다. 2015년 1월쯤 이른바 ‘샘플실’ 영상과 ‘최순실이 짠 문화융성 사업과 예산’ 자료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건을 보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A4용지 한 장에 문화사업 개요만 정리해놓고 예산액수를 수십억씩 적어놓았으니 누가 봐도 장난 같았다. 그런데 1년 동안 지켜보니 문건대로 문화융성사업의 틀이 짜이고, 예산이 집행된 걸 보면서 ‘아, 이건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홍정열 기자, <최순실 게이트‘ 불독’ 언론인…TV조선 이진동, 한겨례 김의겸, JTBC 전진배>,《 폴리뉴스》 2016년 11월 24일자)

훗날 이진동 부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사태의 대략을 파악하고 ‘최순실’을 최종 ‘몸통’으로 저격하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7월 초에 김종 차관, 국가브랜드, 늘품체조 건을 썼다. 그리고 7월 중순에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을 썼다. 그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던 게 이화여대 건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문화융성 사업이라고 내다봤다. 그 많은 예산을 최순실이 짜고 그게 실제로 반영되고 집행됐기 때문이다. 국가를 흔드는 문제라고 봤다. 마지막에 최순실을 꺼내려고 했다”(정철운,《 박근혜 무너지다》, 메디치, 2016, 104쪽)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조선일보》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의혹 보도를 하고 있었다. 훗날 알려진 바로는 TV조선 이진동 부장과 정보가 공유된 것은 아니고 우연이라 했다. 하지만 그 우연 때문에 청와대는 《조선일보》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우병우 수석과 안종범 수석 건을 먼저 터트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순실에게 TV조선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청와대에 알려졌을 상황이다. 청와대는 거세게 반발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인 일부 언론’이라 불렀고, 부패의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8월 말 《조선일보》 간부가 대우조선의 향응을 받았다고 폭로한 이후 실명까지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9월 3일자 사보를 통해 “송희영 전 주필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조선일보 독자 여러분께 충격과 실망을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불거진 의혹에 대해서는 당국에서 엄정하게 수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9월 20일부터 뒤늦게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대한 보도에 나섰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름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물러서지 않았다면 《조선일보》의 공로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결국 전경련은 10월 1일에 두 재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두 재단의 해산 정도로 해결될 국면이 아니었다.

9월 28일, 《한겨레》에서 해당 취재를 진두지휘하던 김의겸 선임기자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향한 간곡한 편지를 지면에 실었다. 언론계에 널리 회자된 이 칼럼은, 박근혜를 향한 언론 연합군의 결성을 예고한 것이었다. 《박근혜 무너지다》란 책에서 이 장면을 묘사한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는 이에 대해 그것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두 언론의 ‘기묘한 동맹’을 강력하게 청원하는 편지 한 통”이었고, 그가 요구한 것이 “1988년 한겨레 창간 이후 한국 언론사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으며, “성사된 이후에도 ‘국공합작’(일본제국의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중국의 국민당 장제스와 공산당 마오쩌둥이 협력한 사건)이니 ‘반나치 미소동맹’(히틀러 나치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동맹)이니 하는 말로 수식될 사건”이었다고 기록했다.(정철운,《박근혜 무너지다》, 메디치, 2016, 126쪽)

(...) 저는 요즘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선임기자라는 직함에서 짐작하시겠지만 제 ‘연식’이 제법 됐습니다. 현장기자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입니다. 그런데도 2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과 함께 취재 일선에 나선 건 <티브이(TV)조선>이 안겨준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한 달 전쯤입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소재로 칼럼을 하나 쓰려고 몇 군데 전화를 돌렸습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괜히 헛다리 긁지 말아요. 우병우가 아니라 미르 재단이 본질입니다. ”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미르 재단이 뭐죠?”“허허, 기자 맞아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조선이 이미 자세하게 보도를 했더군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여당 성향의 조선도 이토록 치열한데 난 뭐 하고 있었나, 선임기자랍시고 뒷짐 진 채 거들먹거리기나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편집국장에게 취재팀을 꾸리자고 요청한 겁니다. 천하의 게으름뱅이인 제가 말이죠.

취재를 하면 할수록 조선의 보도가 훌륭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취재 그물은 호수를 다 덮도록 넓게 쳤는데도 그물코는 피라미 한마리 빠져나갈 틈 없이 촘촘했습니다. 7월 27일이 첫 보도인데 이미 4월부터 취재에 들어갔더군요. 재단의 어느 관계자는 저희 기자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조선 기자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달라붙었으면 그랬겠습니까.

다행히도 조선의 손때가 덜 탄 곳이 있었습니다. 케이스포츠입니다. 미르는 조선이 싸그리 훑고 지나가 이삭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는데 케이스포츠에는 그나마 저희 몫이 조금은 남아 있었습니다. 최순실입니다. 저희가 케이스포츠 현장에서 찾아낸 최순실의 발자국과 지문은 어쩌면 조선이 남겨놓은 ‘까치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이런 말을 했다죠.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 저희가 감히 뉴턴 행세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한겨레가 한발짝 더 내디딜 수 있었던 건 조선의 선행보도가 거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선이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송희영 주필 사건 이후 처신하기가 어려워졌겠죠. 게다가 내년 3월에는 종편 재허가를 받아야 하니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건 조선이 취재해 놓고 내보내지 못한 내용입니다. 저희가 조선의 뒤를 좇다보니 ‘잃어버린 고리’가 두세 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건의 전체 모자이크를 끼워맞출 수 있는 ‘결정타’들이죠. 조선이 물증을 확보한 듯한데 보도는 실종됐습니다. 기사는 언제 햇빛을 보게 될까요.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힘 빠졌을 때라면 가치가 있을까요? 사장님은 기자들 수백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깥사람들을 만나서 틈만 나면 기자들 자랑을 해대는 통에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죠. 그렇게 아끼는 기자들의 땀방울이 어느 캐비닛에 처박힌 채 증발돼가고 있습니다.

기자 개개인보다는 조선의 이름값이 더 중요하겠죠. 사장님은 몇 년 전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저녁을 사면서 이런 건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 언론이 이념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념 위에 언론이 있다. ” 폭탄주는 끊으셨기에 알잔은 맹물로 채웠지만 건배사 내용만큼은 100% 원액처럼 진했다고 하더군요. 사장님은 젊은 시절 방갑중이라는 이름의 성실한 외신부 기자였고 그 시절을 그리워 한다고도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당당할 때 권력도 감히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십시오.(김의겸 선임기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한겨레》, 2016년 9월 29일자)

‘최순실’의 이름이 공개되자 사람들의 관심사도 높아졌다. 우병우 수석이나 안종범 수석이 거론될 때와는 다르게, 정권 자체의 존망을 가를 문제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10월 7일부터는 페이스북에서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아직 많은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는 현실에서 SNS의 시민들이 최순실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해 달라고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김형민 SBS CNBC PD가 10월 7일 아침에 제안한 이 해시태그 운동은 급속도로 공유되기 시작하여 그날 저녁에 CBS 노컷뉴스에서 기사로 나오기에 이른다. 다음날인 10월 8일에는 《한겨레》 보도가 나왔고, 10월 11일에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관련 인터뷰가 나오게 된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가수 이승환 씨, 배우 김의성 씨도 참여했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 이후 관련 뉴스를 자계정 페이스북에서 소개할 때 “#그런데최순실은요?”를 붙이기 시작했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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