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문제점, 한 가지는 자유한국당이 해결
현재 ‘적폐청산’의 컨트롤 타워는 분명히 서울 중앙지검이다. 청와대나 국정원 개혁 TF에서 수사의뢰의 형식으로 많은 재료를 보낸 것은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요리는 모두 검찰에 맡겨져 있다.
이런 상황은 두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의 함의는 ‘청산’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새 질서(제도 포함)의 정립이 궁극적 목표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문민정부는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명확히 정립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청와대나 여당의 의지/계획과 별개로 ‘선 청산-후 정립’으로 보인다. 청산을 정립으로 유도하는 마키아벨리적 기획을 포착하기 어렵다.
물론 여론의 압도적 우위와 이에 바탕한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장기전략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2020년 총선 이후를 정립의 시점을 상정하는 것은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둘째, 검찰에게 주어지는 과제의 하중과 파워가 비례하는 것이다. 적폐청산의 성공을 검찰의 공으로 돌릴 수 없듯 그 실패를 검찰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상황에선 삐걱거림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댓글 관련 인사들의 연이은 자살, 일부 관련자들의 구속 영장 기각이 한 축이고 국정원 특활비 의혹의 정치권 전반 확산/청와대 전 정무수석에 대한 수사가 다른 축이다.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를 찾아 공수처 설치를 강조한 것도 이 맥락 하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문제점은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둘째 문제점은 아슬아슬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검찰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법무부-검찰 특활비 논란은 자유한국당이 제도 개선을 선도하고 정치적으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사안이다. 수사의 대상이 되는 국정원 특활비 논란을 좁게 묶어 버리는 부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수처 역시 처장 추천 제도에서 실익과 검찰 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정권 초반을 넘어서면 결국 공수처는 ‘살아있는 권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기구다. 일부 눈 밝은 검찰 출신 의원들이 전향적 기류를 보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공수처는 걷어차 버렸고, 특활비에 관해선 ‘현 검찰과 법무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을 대상으로 특검,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 문고리 3인방,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 등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제1 동심원을 형성했던 인사들이 대부분 수감되어있는 상황에서 가장 상징적 인물 중 한 사람은 최경환 의원이다. 관행으로서의 특활비와는 다른 혐의를 받고 있는 최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순망치한’을 웅변했고 의원들은 강하게 호응했다.
본인이 특활비 논란의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홍준표 대표가 ‘우리 특검은 최경환/박근혜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소용없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서청원-최경환에 대한 압박 등 ‘박근혜 색깔 지우기’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은 특활비를 고리로 다시 전 정부와 한 몸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곧 원내대표 경선을 실시한다. 후보들은 의원들의 사정 불안감에 경쟁적으로 호응할 것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꼴이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과 여권의 약점을 벌리긴 커녕 그들을 맹렬히 도와주고 있다. 여론의 호응,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관계 등을 감안할 때 특검이 성사될 가능성은 제로다. 검찰에 대한 지지여론은 더 높아질 것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논의를 막을 순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검찰에겐 좋은 일이다.
다만 현 상황의 두 번째 문제점을 자유한국당이 이렇게 해결해주면 첫 번째 문제점은 더 가려질 수 있을 것이다. 여권은 이 지점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