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적으로 유리한 여권, ‘역-시너지’ 주의해야
박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지 1년이지만 헌법재판소가 명확한 판단을 내린 것은 9개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는 7개월 남짓 됐다.
전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흔적은 빨리 사라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그 직에서 완전히 내려온 것은 올 3월이지만, 따지고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통치불능 상태였기도 했다.
현 정부의 정책이나 방향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세력이 그리 적지는 않다. 하지만 이른바 ‘태극기 부대’나 자유한국당 안팎의 친박세력들은 그 반대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박 전 대통령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프레지던시의 상대적 우위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따지면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이 완전히 소멸하진 않은 채 유지되고, 자유한국당이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여권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지금 상황(십 퍼센트 대 후반)보다 조금 더 상승하는 것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反박근혜 정서를 재결집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나 여권이 이 같은 구도 속에서 안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상대평가의 구도가 절대평가로 바뀌는 시점은 분명 오기 마련이다.
또한 몇 차례 지적한 바 있지만 ‘청산(淸算)’은 본질적으로 개혁과 재건을 수반하는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공소시효가 5년 혹은 10년 일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제대로 된 카운터파트너가 정립되지 않는 것은 여권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쪽-현재 30% 안팎이지만 점진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을 합리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집단이 서지 못한다면 개혁과 재건은 난망하다. 지난 해 말 전 국민 중 탄핵 찬성 비율이 80%를 상회한 것의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버퍼존 역할을 할 카운터파트너 정립이 늦어지는 것과 청와대에 대한 아주 작은 이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강성 지지층의 과잉대표 현상 지속이 결합한다면 역-시너지 효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야권, 죽을 때 죽지 못하면 못 산다
여권은 그래도 장기적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야권은 급박하다. 하지만 야당도 시야를 좀 더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죽어야할 때 죽지 못하면, 살아나는 시점도 늦춰질 뿐이다. 바닥을 쳐야 반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경우 지지율이 지금보다는 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 반대층은 보수적으로 봐도 30%는 되는 것이고, 그 중 상당수는 ‘어쨌든 1야당’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현 여권의 경우에도, 바닥을 딛고 올라선 것이 자기 힘에만 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바닥을 쳤기 때문에 반등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바닥을 친 뒤에야 온갖 안간힘을 썼고 바깥의 에너지를 흡수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어디가 바닥인진 모르겠지만, 아직 바닥을 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반성과 성찰, 미래에 대한 고민 없는 친박 vs 친홍의 가짜 싸움 구도가 이어진다면? 그 이후 상황은 예측조차 어렵다.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의 경우 자유한국당보다 심각한 메신저 거부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다당제를 추동할 수 있는 개헌이 실현되면 또 다른 장이 열리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다당제의 장점을 실제로 보여주지 못하면 개헌에 대한 호응은 더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