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더라인] 미국 ‘코피 전략’ 앞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수언론의 문재인 정부 비판에 앞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 기사입력:2018-02-07 08:48:15
요즘 언론들, 특히 보수언론들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의중과 맞지 않다는 식의 비난이 많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펼치려는 대화 국면에서 무리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석을 유도하는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였다. 그런데 욕심으로 그 이상을 원했던 것인지, 여성 아이스하키 대표팀 단일팀 논란 등 오히려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들까지 추진되다가 말이 생겼다. 예술단 공연 같은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리고 큰 틀에서 살펴보자면 이런 종류의 소소한 문화적 이벤트가 대북정책이나 한미공조를 좌지우지하거나 어그러뜨리는 일이라 보기는 어렵다.

-‘코피 전략’, 찬성하든 반대하든 문재인 정부의 잘못은 무언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이 북한에 대한 ‘코피 전략’을 준비하는 미국을 거스른다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그들은 먼저 본인들이 그 전략에 대한 찬반 여부부터 밝혀야 한다.

‘코피 전략’은 미국의 대북 폭격을 의미하는데, 핵시설 등 군사시설에 대한 예방적 타격을 의미하기도 하고 상징적 공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엔 정밀 외과 수술처럼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공격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으니 이제는 평양의 상징적인 건물을 두들겨서 힘을 과시하겠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본때를 보여주겠다’이고, 말 자체야 언론이 만든 것이라지만 표현 자체로 남중고생 몇 명이 학창시절 교실 뒤편이나 운동장에서 드잡이질 하는 수준의 용어다. 현실적으론 북한이 미국의 군사행동이 ‘상징적’이란 걸 이해하고 반격을 하지 않아야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을 수 있는 전략(?)이다.

만약 보수언론이 ‘코피 전략’을 찬성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된다. 그러나 그 경우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는 것은 없다. 평창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석하고 단일팀 옷 색깔이 어떻고 예술제가 개최되고 남한 선수들이 마식령스키장에 갈 때 경유 조금 들고 가는 것 등등 지금 논란을 만들어내는 것들 중 어느 것도 미국의 군사적 자산을 약화시키거나 북한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일이 없다. ‘코피 전략’을 찬성하는 이의 입장에서 볼 경우, 문재인 정부는 아무것도 망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왜 문 정부가 워싱턴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 호통을 치는 걸까?

만약 보수언론이 ‘코피 전략’에 반대하며 미국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라면, 그들의 문재인 정부 비판은 더욱 해괴해진다. 문재인 정부의 의중은 정확하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행동의 합리적 핵심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줄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남한의 동의 없는 한반도 전쟁은 불가능하다. 남한은 전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줄곧 말하는 정부의 전략적 접근을 비판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전쟁 없이 해결하려면 결국 북한이 갑갑해서 협상장에 나와야 하는데, ‘전쟁 가능성’을 남한이 관리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북한을 상당히 덜 갑갑하게 만드는 일일 테니 말이다. ‘전쟁’이란 단어를 입에 담아야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딜레마적 상황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 점은 인정이 되지만, 트럼프에 대해 우려하듯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먼저 개시할 유력한 주체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면, 남한이 그 사이에 끼어서 어떻게든 대화판을 깔아 보려 노력하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어떻게든 찬물을 끼얹으려고 하는 이들은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란 말도 나온다. 이 말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한 바 있고, 매우 부적절한 말이라 보았다. 이 말의 함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고 북한은 이를 포기할 의사도 없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협상력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잘못 되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 측에서 북미대화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입장에선 북한 미사일 사거리가 그들 국토를 포섭한지 오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질 일도 없다. 오직 미국 입장에서만 문제다.

북한의 핵미사일 사정거리가 미국 본토까지 확장되면 미국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 사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북한이 그걸 들고 있다고 먼저 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미국 본토로 발사하면 북한은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걸 미국도 알고 북한도 안다.

본토공격의 위협을 막기 위해 미국이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인가? 그리 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을 훨씬 더 많이 들고 있다. 그런다고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말을 다 들어주지 않는다. 타격할 수 있는 거야 상호마찬가지이며, 군사력도 미국이 훨씬 더 강하고 다른 제재수단도 많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핵미사일을 들게 된다면 좀 더 성가신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경천동지할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이 중동의 누군가들처럼 ‘진짜로 미친 놈’이 아니라 ‘미친 척하며 잇속을 챙기려는 협상가’란 사실을 안다.

오히려 어려워지는 것은 북한이다. 한국에서 북한 경제를 가잘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는 김병연 교수는 최근의 대북 무역제재가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외환보유고가 감소된 것으로 추정하고, 제재가 지속될 경우 외환위기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은 핵무력 확보에 성공했다고 서둘러 발표한 상태다. 지금까진 대내적으로 핵을 완성하기만 하면 적들이 항복할 테니 그때까지만 허리띠를 졸라 매자 선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목표 달성 이후에도 주민의 삶이 계속 악화된다면 다급해지는 쪽은 북한이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보수언론, ‘기우제식 보도’는 자제해야

북한은 아마도 남북대화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국제적 제재 공조의 틀에서 이탈시키고 과거의 햇볕정책과 같은 지원을 얻어내자는 의도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자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없다. 북한 경제규모가 남한의 수십 분의 일 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190억불 정도로 추산되는데, 마식령행 전세기에 쓴 돈 9천만원(9만불), 훈련하려고 들고 간 경유 1만리터(700만원, 7천불) 정도로 ‘대북 퍼주기’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사실 대부분 소모되는 돈이지 북한에 넘어가는 돈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완화시키자고 주장한다면 이는 새로운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상 이를 용인할 리도 없고, 문재인 정부도 운신의 폭을 좁힐 접근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대화가 의미가 있는 것은 양측이 서로의 의중을 파악해야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하고 우발적인 군사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북한 문제는 쉽지 않고, 해법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시장경제 시스템을 일부 허용한 김정은 체제의 선택이 체제 위기를 만들어낼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이렇게 어렵고 인내심이 필요한 문제를, ‘정권 망해라’며 기우제나 고사를 지내는 식의 이슈로 써먹는 보수언론을 보면 황당하다. 비록 신문 산업이 사양길이라지만, 굳이 이렇게 추한 말년을 보내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말이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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