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대구고법현판
이미지 확대보기피고인은 2020년 6월 24일 오후 10시 52분경 승용차를 운전하여 경북 의성군 봉양면 경북대로 앞 편도 2차로의 도로를 의성읍 쪽에서 봉양면 쪽으로 2차로를 따라 시속 약 70km(제한속도 시속 64km, 하향등)의 속도로 진행하게 됐다. 당시는 야간이고 비가 내려 노면이 젖어있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전방주시의무를 게을리 한 채 운전한 과실로 편도 2차로 도로의 1차로와 2차로 사이에 누워있던 피해자(20대·남)를 역과했다. 피고인은 업무상과실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게 했음에도 즉시 정차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해 피해자를 같은 날 오후 10시 58분경 현장에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
1심(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2022. 6. 9. 선고 2021고단134 판결)은 피고인에게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① 피고인에 앞서 이 사건 사고 장소를 지나간 B이 원심법정에서 ‘피해자가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약 50m 전방에 누워있는 피해자를 발견한 후 회피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 점, ② B에 앞서 이 사건 사고 장소를 지나간 C와 D 역시 도로에 누워있는 피해자를 사전에 발견한 후 회피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비록 이 사건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주변이 어두워 시야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더라도 도로에 누워있는 피해자를 사전에 발견한 후 회피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당시 상황에 비추어 피고인으로서는 도로에 누워있던 피해자를 미리 발견한 후 회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설령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하여 유죄로 판단했다"며 양형부당과 함께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사고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업무상과실이 있다거나 설령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고 받아들였다.
우선 B의 경우, 하향등이 아닌 상향등을 켜고 있었을 뿐 아니라 운전을 직업(신문배송)으로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사고 회피 사실을 가지고 피고인의 주의의무위반을 추단할 수는 없다(B은 원심에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라는 취지로 증언하기까지 했다). 다음으로 C, D의 경우, 위 사람들이 상향등과 하향등 중 어떤 것을 점등하고 운전했는지 확인되지 않는 등 그들의 운전상황에 관한 아무런 증거가 없어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고회피 사실을 가지고 피고인의 주의의무위반을 추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이 법원의 도로교통공단에 대한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설령 피고인이 제한속도인 시속 64㎞를 준수했다고 하더라도 제동장치의 조작을 통한 사고회피 가능성은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특히 이 사건에 있어 피해자는 보행 중이 아니라 누워 있었고 또 하의가 어두운 색이었으므로, 가시거리가 약 37m 보다 더 짧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 사건 도로의 1차로 쪽에는 중앙분리대가, 2차로 쪽 진행방향 앞부분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피해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과 이 사건 사고 장소에 아무런 외부 조명이 없었음에 따라 운전자로서는 도로 밖 공간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순간적인 조향장치 조작을 통해 피해자를 피해갈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 피고인과 같은 몸무게의 운전자 1명이 탑승한 차량이 제한속도인 시속 64㎞의 속도로 노면이 젖은 아스팔트 도로를 진행하다 제동을 한 경우에 있어, ‘정지거리’(운전자가 전방의 위험을 인지한 때부터 제동장치를 조작하여 차량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진행한 총 거리)는 약 44.66m(= 공주거리 약 17.78m + 제동거리 약 26.88m)이다. 여기서 ‘공주거리’란 일반적으로 운전자가 장애물 등의 위험을 인지하고서 즉각 제동장치를 조작하여 실제 그에 의한 제동효과가 처음 발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진행한 거리를 말하고, ‘제동거리’ 란 실제로 제동장치가 작동하여 최초의 제동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부터 제동력의 계속적 작용에 의하여 차량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진행한 거리를 말한다
○ 아무런 외부 조명이 없는 한밤에 피고인 차량과 같은 종류의 차량이 전조등 중 하향등을 켰을 경우, 운전자가 백색 의복을 착용한 보행자를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시거리는 약 37m이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