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고병수 변호사
이미지 확대보기술과 관련한 여러 범죄 중에서 특히 죄질이 나쁜 범죄 중 하나가 준강간이다. 준강간은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는 범죄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의 취약한 상태를 틈 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형법에서도 준강간을 강간에 준하여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어, 준강간 성립 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문제는 음주 후 만취 상태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기억이 어긋나 준강간의 성립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준강간이 성립하려면 사건 발생 당시 당사자의 상태가 심신상실이거나 항거불능이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의 기억마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성관계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거나 해당 장소에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만일 당사자가 만취하여 인사불성으로 의식조차 없는 ‘패싱 아웃’ 상태라면 당시 행위 통제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준강간의 심신상실, 항거불능 상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패싱 아웃 상태인 사람과 성관계를 했다면 이는 준강간에 해당하며 처벌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 술에 취하긴 했지만 행위 통제 능력이 상당히 남아 있는 ‘블랙아웃’ 상태라면 단순히 그 후에 기억을 상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 법원 역시 술에 취해 단순히 기억만을 잃는 블랙아웃 상태에서 사건이 벌어진 경우에는 준강간 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있다.
법무법인YK 고병수 형사전문변호사는 “당사자도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려면 여러 종류의 간접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당사자의 평소 주량과 당일 마신 술의 양, 술을 마신 시간과 주종, 술을 마신 뒤 당사자의 거동을 확인할 수 있는 주변 건물의 CCTV나 블랙박스 영상, 다른 사람과의 통화 또는 문자 내역, 동석한 사람들의 진술 등 여러 증거를 활용해 당사자의 신체 상태가 어떠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news@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