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제유진.
이미지 확대보기무효표와 같이 당선자를 선택하지 않은 표를 사표(死票)라고 한다.
투표지 한 장에도 삶의 의미를 담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기표 도장 한번 찍는 일로 생사의 순간을 겪는다고 상상하긴 힘들다.
하지만 지난 4. 10. 오후 부산진구 어느 투표소에서 한 청년이 쓰러졌다. 현장의 투표사무원은 큰 소리로 119 신고를 요청했다.
의식을 잃어 호흡이 어려운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숟가락을 들어 청년의 숨길을 열었다. 낯빛이 파랗게 변하자 이내 심폐소생술을 했다. 2~3분쯤 지나 청년은 의식을 되찾았고, 마침 도착한 구급대가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가 떠난 기표소엔 투표지가 뒤집어져 있었고, 참관인들이 보는 가운데 투표함에 넣었다. 여기에선 한순간 투표가 멈췄다.
투표소 대기 줄에선 누구 하나 15분의 기다림을 탓하지 않고, 모두가 청년의 무사 회복을 기원했다. 가야2동주민센터 윤종모 주무관은 당시 투표소에서 한 생명을 구하고 투표사무원으로서 유권자의 한 표도 살렸다.
예기치 못한 순간마저도 염려해야 할 만큼 선거사무에는 국가의 모든 역량이 필요하다.
투표소의 응급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한 119 소방서, 24시간 투표지와 선관위 직원을 지켜준 경찰, 급증하는 우편투표를 신속·정확하게 배송해준 우체국, 투·개표 장소를 기꺼이 내어준 관공서와 민간시설의 관리자, 밤 새워 새벽에도 표를 세고 또 확인한 개표사무원 등. 그 중에서도 선거인명부를 작성하고, 선거공보를 발송하고, 투·개표관리에 온 힘을 더하여준 지자체 직원의 역할이 제일 크다.
이루 말하기 힘든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한 시청 직원은 퇴임 1년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연이틀 14시간씩 사전투표를 관리한 다음날이었다.
연초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한 임원은 우리 사회가 약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자신에게도 ‘불편한 세상이지만 이젠 익숙해져 괜찮다’고 한다.
이렇듯 소수의 희생과 특정인의 수고에 기대 국가 전체의 사무인 선거를 온전히 치르긴 어렵다. 불편함에 익숙해지고 누군가는 목숨마저 걸어야 하는 일이면 더욱 그렇다.
유권자도, 선거사무 종사자에게도 그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선거관리는 없다. 이번 총선 관리에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부산 부산진구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제유진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