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양정은 변호사
이미지 확대보기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직 중이거나 특정 근무일수를 채우는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과거 대법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봤는데, 재직 조건이나 일정 근무 일수 충족 등으로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정기상여금에 ‘재직 중인 근로자만 지급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아 추가적인 수당 산정 시 부담을 덜어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고정성이라는 기준 자체를 통상임금 판단 요소에서 배제했다. 그 대신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춰, 정기성·일률성이 충족된다면 재직이나 근무 일수를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있어도 통상임금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소정근로 일수를 넘는 추가 근무일수 요구, 업무 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성과급 또는 무사고 수당 등 근로자가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조건이 붙은 성과급은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도 판결문에서 명확히 정리됐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중앙이평의 고용노동부 출신, 노동법 전문 양정은 대표변호사는 “종래 대법원 판결이 재직 여부나 근무 일수를 조건으로 달면 고정성이 결여되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본 것에서 탈피해 임금의 근로 대가성에 주목한 큰 방향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판결로 가장 관심을 끄는 지점은 통상임금의 폭이 넓어져 초과근로수당, 야간·휴일수당, 연차휴가수당 등이 전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정기상여금은 기본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임금 항목이어서 그동안 재직 조건 등을 붙여서 통상임금 산정 시 제외해왔던 회사들은 예기치 않은 비용 부담 증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양정은 변호사는 “기업 측면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올라갈 여지가 있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체불임금이나 수당 미지급 문제에 있어 통상임금의 재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양측이 어떻게 새로운 임금체계를 정비해나갈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내다보았다.
판결 이후 대법원은 수많은 집단적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번에 정립된 새로운 법리를 2024년 12월 19일 선고일부터 발생하는 통상임금 산정분부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 사건 및 현재 재판에서 조건부 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에는 소급 적용된다는 단서를 달아 이미 소송을 진행 중인 근로자들은 해당 판결이 확정되면 소급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양정은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의 강행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설정해놨던 조건들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며 “노동자와 사용자가 실질적 보상의 개념에서 임금구조를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지난 11년간 유지해왔던 통상임금의 ‘고정성’ 개념을 폐기함에 따라, 근로 현장에서 임금 구조에 대한 해석과 적용 방식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이번 판결로 새롭게 정립된 통상임금 기준에 주목하고 있으며, 재판부가 제시한 ‘소정근로의 대가성’이라는 중심축을 통해 임금 체계를 재정비하는 흐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news@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