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따르면 30대 A씨는 네이버의 영어 관련 카페의 회원이었는데, 위 카페는 영어학원 강사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활용 목적으로 만든 카페여서 회원수는 1500명 정도이나, 실제로 활동하는 회원은 대부분이 당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이었다.
이 카페에 가입해 영어공부에 관한 활동을 하던 A씨는 2010년 3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금메달리스트인 피겨선수 김연아를 환영하면서 두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자, 김연아 선수가 이를 피하는 듯한 장면을 편집한 사진이 인터넷에 게시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이 카페 게시판에 올리면서 ‘퍼옴’이라고 표시했다.
그 후 유인촌 장관은 이 게시물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했고, 서울종로경찰서장은 2010년 3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A씨의 인적사항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네이버는 서울종로경찰서장에게 A씨의 인적사항을 제공했다.
종로경찰서장은 제공된 통신자료(성명,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에 의해 A씨를 소환해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조사를 했으나, 그 후 2010년 4월 고소가 취하돼 사건이 종결됐다.
A씨는 “네이버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정보제공요청을 받더라도 이용자의 통신비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기구의 심사를 통해 사안에 따라 회원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네이버는 이런 의무에 위반해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아무런 판단 없이 기계적으로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공했으므로, 이로 인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재판장 이은애 부장판사)는 2011년 1월 A씨가 NHN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로부터 필요한 자료의 범위가 기재된 통신자료제공요청서를 제출받아 관계 법령 및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원고의 아이디와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러한 피고의 법령 및 업무처리지침에 따른 원고에 관한 정보제공이 회원인 원고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거나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24민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2012년 10월 “피고(NHN)는 원고에게 위자료 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기통신사업자인 피고에게는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개별 사안에 따라 제공 여부 등을 적절히 심사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침해되는 법익 상호간의 이익 형량을 통한 위법성의 정도,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여부 및 어느 범위까지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세부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으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게시물은 공적 인물인 (유인촌) 장관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당해 표현이 공공적ㆍ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하고, 특히 공직자의 도덕성ㆍ청렴성이나 그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감시와 비판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이 게시물의 표현 대상과 내용, 원고가 게시물을 게재한 동기와 경위 등에 비추어 게시물이 공적 인물인 장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고는 게시물을 직접 생산하거나 편집한 바 없이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것을 이 카페의 유머게시판에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해 게시물로 인한 법익침해의 위험성이 원고의 개인정보 보호에 따른 이익보다 훨씬 중대한 것이라거나 수사기관에게 개인정보를 급박하게 제공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가 수사기관에 대해 원고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 일체를 제공한 행위는 원고의 개인정보를 충실히 보호해야 할 의무에 위배해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내지 익명표현의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함으로써 원고로 하여금 법익침해와 관련한 손해를 입도록 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의 개인정보 제공행위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고, 피고로서도 그런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의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 대법원의 판단은?
이 사건의 쟁점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제3항 등에 따라 수사관서의 장에게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익명표현의 자유 등을 위법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0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회원인 A씨가 네이버(NHN)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2다105482)에서 “피고는 A씨에게 위자료 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해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 위법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있을 때 전기통신사업자가 개별 사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 제공 여부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돼야 할 것이나, 일반적으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그러한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실적으로 사법기관도 아닌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를 요구하거나 기대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해 이러한 심사가 행해질 경우 그 과정에서 혐의사실의 누설이나 그 밖에 별도의 사생활 침해 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봤다.
또 “통신비밀보호법이나 형사소송법이 현재 또는 과거에 이루어진 전기통신의 내용이나 외형적 정보에 대하여는 법원의 허가나 법관의 영장에 의하여만 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 반면, 전기통신사업법은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관한 정보에 해당하는 통신자료에 대하여는 수사기관의 서면요청만으로도 전기통신사업자가 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수사상 신속과 다른 범죄의 예방 등을 위해 해당 개인정보의 내용과 성격 등에 따라 통신자료에 대하여는 법원의 허가나 법관의 영장 없이도 일정한 사항을 기재한 수사기관의 자료제공요청서라는 서면요청에 의해 통신자료를 제공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할 수 있는 이용자의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관한 정보로서, 이는 주로 수사의 초기단계에서 범죄의 피의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이고 신속하게 확인해야 할 정보에 해당하는데, 위 규정에 의한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으로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음에 비해, 통신자료가 제공됨으로써 제한되는 사익은 해당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한정돼 사익의 침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는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에 대해 직접 이루어져야 함이 원칙”이라며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해 일반적으로 그 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이 수사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자료의 제공을 요청하고, 이에 전기통신사업자가 형식적ㆍ절차적 요건을 심사해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제공했다면,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이 통신자료의 제공 요청권한을 남용해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로 인해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익명표현의 자유 등이 위법하게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피고가 종로경찰서장의 요청에 따라 원고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제3항, 제4항에 의한 적법한 행위로서, 그로 인해 피고가 원고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 대법원의 의미는?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제3항 등에 근거한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에 관해,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 여부를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와 통신자료 제공으로 인해 해당 이용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에 관해 대법원이 최초로 판단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해 통신자료 제공에 관한 실질적인 심사가 행해질 경우 그 과정에서 혐의사실의 누설이나 별도의 사생활 침해 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더 큰 점과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는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에 대해 직접 이루어져야 함이 원칙임에도,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해 일반적으로 그 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점 등을 고려해, 전기통신사업자의 민사상 책임의 범위를 정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