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김영란법’은 알맹이가 빠진 “‘박’영란법”이라며 비판했다. “‘박’영란법”이라는 표현은 당초 ‘김영란법’의 원안에 박근혜 대통령의 입김이나 손길이 닿아 수정 변경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 해결을 위해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겠다”며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그러자 새누리당도 “부정청탁금지법안 등에 대해 선제적으로 국회에서 입법 과정에 반영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조국 교수는 SNS에 “박근혜 대통령, ‘김영란법’ 통과를 강조했다. 그런데 작년 8월에는 왜 이 법의 알맹이를 빼버리고 국무회의를 통과시켰나요?”라고 따져 물었다.
특히 노회찬 전 대표는 트위터에 “정부가 제출하여 국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금지법’은 김영란법 원안이 아니다”며 “대가성 없는 금품, 향응까지 형사처벌하는 내용 등이 법무부의 반대로 빠진 ‘박’영란법입니다. ‘박’영란법 철회하고 김영란법 통과시켜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전 대표의 주장은 ‘박’영란법은 당초 ‘김영란법’에서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노회찬전정의당대표
이미지 확대보기그렇다면 ‘김영란법’은 무엇이고, ‘박’영란법은 무엇일까.
2010년 8월 대법관을 역임하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하던 김영란 전 대법관은 2011년 1월 제3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2012년 8월 공직자의 금품ㆍ향응 수수 시 대가성 없이도 처벌하고, 부정한 청탁만으로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부정청탁금지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부정청탁금지법이 발표되자 국민과 정치권은 술렁였다. 공직자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하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새 이 법안은 ‘김영란법’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김영란법의 핵심인 제11조(금품 등의 수수 금지) 제1항은 “공직자는 직무상의 관련 여부 및 기부ㆍ후원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사업자 등이나 다른 공직자를 포함한 어느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했다.
만약 이를 위반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위반행위와 관련된 금품 등 가액의 5배에 상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이번 부정청탁금지법 제정안은 기존의 부패방지를 위해 마련돼 있는 관련 법령이 갖는 한계를 보완한 것으로, 형법, 공직자윤리법, 권익위법, 공직자행동강령 등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웠던 부패의 사각지대를 현실적으로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공직자의 부패ㆍ비리사건으로 인해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낮은 상황이지만 기존의 법령과 제도만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공직자가 사업자나 다른 공직자로부터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ㆍ요구ㆍ약속하는 경우에는 비록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수한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 받게 된다. 공직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처벌하도록 했다. 다만,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는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지게 했다.
현행 형법의 ‘수뢰죄’ 관련 규정으로는 금품과 직무수행과의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하기 어려웠으나, ‘김영란법’은 그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스폰서, 떡값 수수 등 기존에 발생돼온 부패관행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2010년 일명 ‘스폰서 검사’ 사건에 대해 법원은 “식사와 술 등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향응수수가 직무와의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뇌물수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2010고합1321, 2010고합1322)했다.
또 중국 국적 선사의 선박운항허가와 관련해 8천만원을 수수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에 대해 대법원은 직무관련성이 없어 뇌물수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2008년 상수도 사업본부 직원 10여명은 특정 회사로부터 중국산 주철관을 KS인증 국산제품으로 납품받으면서 자녀 장학금 명목으로 7억원 상당의 금품을 교부받았으나 뇌물이라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바로 ‘김영란법’인 부정청탁금지법안이 시행되면, 공직자가 금지된 금품ㆍ향응을 받는 경우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는 경우에도 과태료ㆍ형벌로 제재 받게 되는 것이다.
형법의 뇌물죄 관련 규정으로 처벌하기 어려웠던 공직자의 부정한 금품ㆍ향응 수수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법 규정의 신설을 통해 공직사회의 부패ㆍ비리 관행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제정안은 이와 함께 제3자를 통해 공직자가 수행하는 직무에 관해 ‘부정청탁’을 하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다. 부정청탁은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ㆍ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청탁 또는 알선행위를 말한다.
이해당사자가 제3자를 통해서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하거나, 제3자가 자기 일이 아닌데도 나서서 직ㆍ간접적으로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하는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이해당사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제3자의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규정했다.
또한 제3자인 공직자가 다른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한 경우 공직자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해 일반 사인(私人)이 부정청탁한 경우보다 더 무거운 과태료를 물도록 만들었다. 부정청탁 자체가 발을 못 붙이게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공직자가 ‘부정청탁’을 받았을 때에는 명확히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도록 하고, 거절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정청탁이 거듭되면 이를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만약, 공직자가 부정청탁을 받고 신고 등의 처리절차를 거치지 않고 부정청탁에 따라 위법ㆍ부당하게 직무를 처리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규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금지규정 입법을 통해 통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연고관계, 사회적 영향력 등을 이용한 청탁관행이 엄격히 제재됨으로써 부정청탁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문화가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법안은 공직자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도 다양하게 마련했다.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에 대한 제척ㆍ기피ㆍ회피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또한 차관급 이상 공직자,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공공기관의 장 등 고위공직자가 신규 임용되면 민간부문에서 재직하던 때의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임용 후 2년간은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고위공직자 등이 자신의 가족을 소속기관에 채용하거나 소속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 직무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미공개정보를 이용하는 행위 등도 엄격히 금지했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미 발생한 부패에 대한 사후 적발ㆍ처벌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의혹과 불신을 초래하는 청탁관행, 사익추구 행위 등 부패행위의 근원적 요인을 차단해야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며 “부정청탁금지법은 부패행위에 대한 단순한 처벌법이 아니라 공직활동의 청렴성ㆍ책임성ㆍ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 행위기준을 제시하고, 신고자 보호조항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부패예방 법률인 만큼 우리나라의 반부패ㆍ청렴정책을 선진국형 사전 예방정책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이것이 바로 ‘김영란법’이다. 이 법안은 2012년 8월 22일부터 10월 2일까지 40일간의 입법예고를 거쳤고, 그 기간 중에 국민과 시민사회의 의견도 수렴했다.
그런데, 국민권익위원회가 마련해 국민들이 박수를 친 ‘김영란법’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1년가량 머물며 쉽게 국회로 넘어가지 못하다가, 박근혜 정부가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거쳐 작년 8월 국회에 제출됐다.
그런데 이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부정청탁금지법)은 당초 ‘김영란법’의 원안에서 약간 수정됐다.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ㆍ직책에서 유래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하여 금품 등을 받은 경우에는 대가관계가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해당 금품 등 가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함”이라고 규정했다.
얼핏 보면 당초 ‘김영란법’으로 불린 원안과 수정된 법안의 차이를 찾아내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성을 불문’하고 형사처벌하도록 했으나, 박근혜 정부의 수정안에는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로 완화된 것이다. 노회찬 위원장은 법무부의 반대로 원안이 수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란법에서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하려던 것을 수정된 법안은 과거처럼 ‘직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하기에 조국 교수와 노회찬 전 대표의 비판처럼 “‘박’영란법”이라며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