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재판장 신진화)은 지난 14일 외부성기 형성 수술을 받지 않은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성전환자 여성)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허가했다.
이번 결정에서 법원은 2006년의 대법원 결정 및 현행 대법원 예규의 해석과 외부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가 처한 구체적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결정이유를 밝혔다.
먼저 신체외관상 여성으로의 변화와 여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있어 외부성기 형성 수술은 필수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외부성기 형성 수술이 의료기술상의 한계와 후유증의 위험이 크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신청인과 같이 외부성기 수술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전환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다음으로 외부성기 형성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는 사고나 질병으로 생식기 등을 절제한 경우와 다르지 않음에도 성별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점, 공동체 내 다른 구성원이 혐오감, 불편함 등을 느낀다는 주장은 다양성 존중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민주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 외부성기 형성 수술을 받지 않아 성전환자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해 국가가 개입할 의무는 없다는 점 등을 통해 성별정정에 있어 외부성기 형성 수술을 요구할 근거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또한 국가의 신분관계와 개인의 행복추구권, 인격권은 분리될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성별 특성에 비추어 신분관계 정립에 있어 성전환자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2006년의 성별정정에 대한 대법원 결정과 대법원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의 해석상 성별정정에 있어 외부성기 형성 수술은 절대적 요건이 아니며, 오히려 이를 절대적인 요건으로 할 경우 헌법상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과 충돌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위 결정에서 성별정정 허가에 있어 “본인이 반대 성으로의 귀속감과 안정을 느끼는 데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외부적ㆍ사회적 성별 기준에 따른 완벽한 또는 매우 유사한 정도의 외부성기 전환까지 마쳐져야 하는지에 대해 성전환자들의 특성은 최대한 반영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06년 성전환자 성별정정을 허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외부성기 수술을 마치지 않으면 성별정정 허가를 명시적으로 불허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해석된다”며 “이와 같이 해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헌법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과 충돌하게 될 우려도 있다”라고 설시했다.
그 동안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성전환자 남성)에 대해서는 2013년 3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외부성기 형성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한 이래 동일한 취지의 허가결정이 다수 있어 왔다.
16일 성적지향ㆍ성별정체성(SOGI)법정책연구회,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성전환자 여성에 대해서 외부성기 형성수술 없이 성별정정을 허가한 것은 이번 결정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영동지원의 결정은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 단체는 “본 결정은 성별정정에 있어 외부성기 요구의 부당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특히 본 결정은 수술 자체의 위험성이나 한계보다는 성별정정을 받지 못한 성전환자가 구체적 현실 속에서 겪는 사회적, 경제적, 인격적 고통 등에 보다 초점을 두고 이에 비추어 성별정정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성전환자의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호평했다.
또한 “대법원 결정 및 예규의 의의를 자세히 분석하여 외부성기 수술 요구의 위헌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다만 “본 결정에서 성별정정의 요건 중 ‘반대 성으로의 신체를 갖춤’에 대해서 호르몬 분비기관, 생식능력의 제거를 결정적 요소로 보고 있으며, 신청인에 대해서도 양측 고환절제수술을 받아 생식능력이 없어졌다는 점을 허가의 주된 이유로 들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특히 “본 결정은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결정에 이어 외부성기수술을 받지 못하였거나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성전환자의 인권 증진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성전환자가 겪고 있는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는 대법원 예규의 개정과 나아가서 성별정정에 대한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 소송은 SOGI법정책연구회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고(故) 유현석 변호사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