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844조(부의 친생자의 추정) 제2항은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여)씨는 2011년 12월 19일 전 남편인 B씨와 이혼에 합의하고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은 다음 2012년 2월 28일 관할 구청에 이혼을 신고했다.
A씨는 이후 S씨와 동거하면서 2012년 10월 22일 딸을 출산했다. A씨는 2013년 5월 구청을 방문해 딸의 출생신고를 하려했다.
그런데 구청은 “딸이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했으므로 전 남편의 성(性)에 따라 전 남편의 친생자로 기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출생신고를 보류했다.
서울의대 법의학교실의 유전자검사 결과 딸은 S씨의 친생자로 확인됐고, S씨는 딸을 자신의 친생자로 인지하려 했다. 이에 A씨가 “혼인 종료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를 전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민법 제844조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30일 “이 사건 조항은 모(母)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2013헌마623)을 내렸다.
헌재는 다만 법적 공백상태를 막가 위해 “이 법률조항 부분은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
이미지 확대보기헌재는 결정문에서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친생추정이 되면, 혼인종료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가 전 남편의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하고 전 남편이 친생추정을 원하지 않으며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에도,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일단 전 남편인 부(夫)의 성(姓)에 따라 부(夫)의 친생자로 등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로 인해 우선 모(母)의 경우, 전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출산한 생부의 자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전 남편의 자로 기재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소기간 내에 전 남편을 상대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모가 이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데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夫)의 경우, 전처가 이혼 후 출산한 제3자의 자가 자신의 친생자로 추정돼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고 이에 따라 부양의무를 부담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벗어나려면 모의 친생부인의 소를 기다리거나 2년의 제척기간 안에 스스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친생추정제도는 모자관계와 달리 부자관계의 정확한 증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것이나, 유전자검사 등을 통해 친자관계 증명이 가능하게 된 현 상황에서 부자관계 입증 곤란은 더 이상 친생추정의 근거가 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헌재는 “그런데 사회적으로 이혼 및 재혼이 크게 증가하고 법률적으로 여성의 재혼금지기간도 폐지됐으며 협의상 및 재판상 이혼에 필요한 시간이 상당히 늘어난 이상,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가 부(夫)의 친자일 개연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됐고, 유전자검사를 통해 생부로 확인된 사람이 자신의 친자를 인지할 적극적 의사가 있는 경우에는 자의 법적 지위에 공백이 발생할 여지도 없다”며 “그러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친자관계를 신속히 진실에 맞게 합치시키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당사자의 의사를 도외시하는 결과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미 모와 부(夫)의 혼인관계가 종료된 이후에 자녀가 출생했고 이 사건과 같이 생부가 그 자녀를 인지하려는 경우마저도, 아무런 예외 없이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를 부(夫)의 친생자로 추정함으로써 오직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서만 친생추정을 번복하도록 하는 심판대상조항은, 친생추정의 주된 목적인 자녀의 복리에 비춰 봐도 지나치게 불합리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결국 심판대상조항이 민법 제정 이후의 사회적ㆍ의학적ㆍ법률적 사정변경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아무런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300일의 기준만 강요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겪는 구체적이고 심각한 불이익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모(母)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단순위헌으로 결정하면, 혼인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에 대한 친생추정이 즉시 없어지게 되므로, 그 자가 부(夫)의 친생자임이 명확한 경우에도 친생추정이 소멸돼 자의 법적 지위에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며 “또한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상태를 어떤 기준과 요건에 따라 개선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형성재량에 속하기 때문에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되,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적용을 명한다”고 설명했다.
◆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재판관의 합헌 반대의견
반면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재판관은 합헌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이 규율하는 범위는 첫째 아무도 친생추정을 다투지 않는 경우, 둘째 자녀의 생부가 전 남편이 아닌 제3자일 개연성이 농후한 경우, 셋째 자녀의 생부가 누구인지 명백하지 않은 경우”라며 “그런데 다수의견은 이 중 둘째의 경우에 타당할 뿐, 나머지 경우에는 법적보호의 공백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 그 자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갖추게 함으로써 법적 보호의 공백을 방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합리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므로, 입법재량의 한계를 준수한 것으로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이번 결정의 의미는?
한편 헌재는 이번 결정에 대해 “이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혼인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子)의 출생신고와 관련해 다양한 편법행위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는 1958년 민법 제정 당시의 기준에서 만들어진 ‘혼인종료 후 300일’이란 친생추정의 기준이 시대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합리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현실과 시대적 상황을 법의 테두리 안에 넣을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모(母)가 자(子)에 대한 전 남편의 친생추정을 회피하기 위해 이미 출생한 子의 출생신고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子의 입장에서는 부(夫) 또는 생부(生父)에 대한 친생자로서의 권리와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급여에 관한 법적 지위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출생하지 않고, 출생 당시 분만에 관여한 사람도 없는 경우에는 출생 사실을 아는 사람 2인이 작성한 출생증명서(인우보증서)만 있으면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모(母)가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죄로 처벌될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출생사실을 아는 2인과 공모해 자(子)의 출생일을 혼인 종료 후 300일 이후로 변경해 허위 출생 신고하는 경우마저 발생하고 있다고 헌재는 전했다.
헌재는 거듭 “이번 결정은, 민법 제정 이후 사회적ㆍ의학적ㆍ법률적 사정변경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아무런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300일의 기준만 강요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겪는 구체적이고 심각한 불이익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심판대상조항이,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모(母)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