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변호사의 이 글은 2일 오후 9시 현재 1964명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371회나 공유될 정도로 많은 누리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법무부장관시절강금실변호사
이미지 확대보기강 변호사는 “밭에서 일하고 있던 한 소녀는 당시 일본인 경찰이 트럭을 몰고 와서 차에 타라하니, 거절도 못하고 머뭇거리며 차에 오르는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달려오며 ‘차 타지 말라’고 손을 내젓는 걸 보았다. 그러나 차는 이미 출발했고 그렇게 끌려갔다 다시 아버지를 만날 수도 없었고, 한 소녀의 가냘픈 삶은 전장에서 잔인하게 짓밟혔다”고 위안부로 끌려간 한 소녀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나의 후배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부들부들 떨려 맘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강금실 변호사는 “이 불가역의 사건에 대한 사과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적어도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경건하며 섬세한 절차가 필요할 것이며, 그 과정에 의미를 담아 잘 이끌어가는 선진화된 정치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짚어줬다.
강 변호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례가 중국 (정치가 초대초리) 주은래의 일본 전범을 다룬 방식이다”며 “전범(전쟁범죄)은 반성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주은래는 참회를 요구했고, 참회할 때까지 반성문을 쓰게 했다. 첨엔 건성으로 위선으로 응하던 전범들도 반복되는 과정에서 외면했던 자신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됐고 결국은 참회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가벼운 처분을 받은 후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의 (전쟁에서의) 만행을 공개하고 선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강금실 변호사는 “사과는 회개가 있어야 가능하며, 그 사과는 가해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그렇지 않은 국가와 인간은 아무리 근사하게 치장해도 야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고 봤다.
강 변호사는 “정치는 부득이 야만을 용인하는 거라고 오인해선 안 된다”며 “야만과 싸우며 더 나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헌신이 정치이기 때문이다”라고 환기시켰했다.
강금실 변호사는 “역사의 아픔과 수치를 기억하는 이유는, 한 공동체가 기억을 잃고 야만으로 회귀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기억의 정치가 필요하다”라며 “그런데 우리는 망각에 익숙해지고 있다. 무어든”이라고 끝을 맺었다.
▲법무부장관을역임한강금실변호사가1일페이스북에올린글
이미지 확대보기강금실 변호사는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3기를 수료 후 1983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서울가정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법 판사, 부산지법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이후 변호사 활동하며 2000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는 검사 출신이 아닌 판사 출신이 게다가 여성으로는 최초로 법무부장관(제55대)에 임명돼 화제가 됐다. 이후 외교통상부 여성인권대사, 유엔(UN)평화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