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돈키호테(?) 같은 경찰관은 자신의 개성표출을 위해 콧수염을 기르다가 상관으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으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경찰관 제복에 이름표를 달도록 강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소신을 갖고 이름표를 부착하지 않았다.
결국 이 경찰관은 경찰공무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고, 이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항소심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그러나 콧수염을 기른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도 이 경찰관의 손을 들어줬다. 통통 튀는 기행으로 유명해진 경찰관이 무슨 생각으로 이 같은 행동을 했는지, 또 법원은 이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집중 진단했다.
◈ 정직 3개월 왜 받았나
서울관악경찰서 소속 경찰관 박OO(48)씨는 평소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 2005년 11월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통행을 금하고 있는 도로교통법 제63조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오토바이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자신이 제기했던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리자, 박씨는 도로교통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기 위해 일부러 위 조항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 형사재판을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에 박씨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지난해 3월1일 자신의 1500cc 오토바이를 타고 신공항고속도로 북인천 나들목을 통행하다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특히 4월9일에는 기자를 대동하고 평택-안성간 고속도로에 진입해 경부고속도로 청북 나들목에 이르러 부산 방면으로 주행하다 경찰에 입건됐다.
박씨의 입건 사실은 이날 YTN-TV ‘돌발영상’에서 현직 경찰관 박씨 등이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단속되면서 단속 경찰관과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이 방영됐다.
또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도로교통법) 법이 바뀔 때까지 고속도로 오토바이 운행을 계속할 것”, “사회적 이슈를 만들기 위해 돌출 행동을 하게 됐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박씨는 또 관악경찰서 모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2005년 4월부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해 콧수염 때문에 경찰서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지구대장의 요청으로 2005년 6월 한 차례 콧수염을 깎았다가 다시 기르기 시작해 지난해 4월까지 2년간 콧수염을 길렀다.
뿐만 아니다. 박씨는 제복에 이름표를 패용하고 근무하던 중 2006년 3월 주취자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이름표 때문에 자신의 인격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근무복에 부착된 이름표를 떼어버리고, 2006년 10월까지 이름표를 달지 않은 채 근무했다.
이로 인해 박씨는 경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와, 이름표 패용과 용모복장 단정규정에 위반해 이름표를 떼어버리고 콧수염을 길러 지시명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4월 관악경찰서 보통징계위원회 의결에 따라 파면 처분됐다.
박씨는 이에 불복해 소청을 제기했고, 소청심사위원회는 지난해 7월 박씨가 법령을 준수하고 성실히 근무할 것을 다짐하는 등 개전의 정이 현저한 점을 참작해 징계의 종류를 정직 3월로 변경했다.
◈ 당당하게 소신 밝히다
그러자 박씨는 정직 3월의 징계처분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먼저 도로교통법 위반과 관련, 박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통행한 것은 오토바이 운전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도로교통법 제63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밟기 위한 수순으로 도로교통법위반으로 입건돼 형사처벌을 자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행위는 헌법적 질서가 부정되거나 위협받는 경우는 물론이고 단순히 정의에 반하는 내용의 개별법령, 법제도나 정책이 시행되는 경우에도 행사될 수 있는 시민불복종권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YTN-TV ‘돌발영상’에 고속도로 주행사실이 보도된 것은 현행범인 체포에 관한 법규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불법으로 체포한 단속 경찰관들로 인한 것이지 원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원고의 행위는 법정형 3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인데, 법정형이 2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돼 있는 도로교통법 제5조(신호위반)를 위반한 공무원에게 징계처분을 한 전례가 없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콧수염에 대해서도 박씨는 당당한 입장을 피력했다. “콧수염은 인간 신체의 일부분으로서 콧수염을 기르는 자체로 용모가 불량하게 되는 것이 아님에도, 콧수염을 기른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신체에 대한 결정권은 개인에게 있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난다”는 게 그의 논리다.
이름표를 패용하지 않은 것과 관련, 박씨는 “이름표 패용이 경찰관 직무를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흉악범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다루기도 하는 경찰 업무의 특성상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성도 크며, 경찰관 제복에 이름표를 달도록 강요하는 지시나 규칙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므로,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씨는 “설령 징계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주장하는 앞의 사정들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처분은 원고의 비위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워 재량권을 일탈했거나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징계처분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 성실의무와 품위유지 위반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박씨의 주장과 달랐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신동승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박씨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정직 3월 징계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의 판단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먼저 도로교통법 위반행위에 대한 박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는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운행하는 것이 위법임을 명백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위법행위를 한 점, 원고가 제기한 헌법소원이 고속도로 등 통행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았음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반복해 위법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는 위법행위를 적발·단속해 국가 법질서를 확립하고 스스로 법령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경찰공무원의 신분인 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위한 목적이었다면 1회 위반으로 충분한 데도 반복해 위반했고, 2회 째는 기자를 대동하고 고속도로에 들어가 언론을 통해 위법행위를 널리 전파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정부당국에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통행을 촉구할 목적이라면 여론의 조성, 법률개정의 청원 등 합법적인 길이 존재함에도 위법행위에 나아간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행위는 공무원으로서의 성실의무 및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름표 미착용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름표를 부착하는 규정은 민주경찰의 위상 확립, 대국민 신뢰 제고 등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경찰공무원 개인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거나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경찰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규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다면 경찰 본연의 기능과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고, 그 존립까지도 위태롭게 될 수 있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임의로 이름표를 달지 않은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성실의무, 품위유지의무 및 지시명령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 법원, 콧수염 허락…1승 2패
재판부는 그러나 콧수염을 기른 행위에 대해서는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먼저 “경찰공무원복무규정 제5조는 ‘용모와 복장을 단정히 하여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콧수염 기르기를 금지행위로 적시한 규정이나 지시는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위 규정이나 지시에 의하면 용모단정이 경찰공무원의 의무에 해당함은 분명하지만, 콧수염을 길렀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지나친 개성표출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준다거나 공무원의 품위에 걸맞지 않는 용모라고 할 수는 없는 만큼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량권 일탈, 남용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의 3가지 징계사유 중 콧수염을 기른 행위는 징계사유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머지 2가지 징계사유만으로도 정직 3개월 처분이 원고의 비위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워 재량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징계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러자 박씨가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5행정부(재판장 조용호 부장판사)는 “1심 판결은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아울러 재판부는 “설시 할 이유는 1심 판결과 같으므로 1심 판결 이유를 그대로 인용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