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김창호)는 이날 <비망록의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다.
법원본부는 법원공무원 1만여명으로 구성된 단체로, 옛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이라고 보면 된다.
법원본부는 “지난 9일(금) 국회는 헌법 상 요건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가 훨씬 넘는 234명의 찬성으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헌법재판소는 같은 날 탄핵소추서가 접수되자마자 탄핵심판 가부를 결정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 그 비선실세들, 이에 조력한 부역자들은 본인들이 가진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휴대폰, 수첩, 테블릿PC 등 수많은 범죄의 증거물을 흘리고 다녔고, 그 증거물 속 국정농단의 내용이 수사와 취재를 통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진실을 알아버린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과 ‘범죄자를 뽑았다’는 자책 속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광장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잠자고 있다가 밝혀진 진실과 현실 인식이 없는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의 발언을 불쏘시게 삼아 촛불은 계속 타오르고 있다”고 촛불민심을 짚었다.
법원본부는 “얼마 전 2014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고(故) 김영한씨의 재직시절 업무수첩이 미망인을 통해 비망록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며 “비망록 속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 등이 적혀 있고, 그 내용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입법, 행정, 사법, 시민 등을 대상으로 한 공작정치의 민낯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비망록 속 법원 관련 공작정치의 내용을 분석해 공개했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법관들만을 대상으로 한 코트넷(법원 내부통신망) 게시글을 통해 “해당 비망록의 일부 문구에 기초해 ‘법원 길들이기’가 이뤄졌다거나 그 밖에 법원이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취지의 여러 의혹 제기가 있지만 모두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조그마한 의심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재판의 신뢰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고 법원본부는 전했다.
법원본부는 “하지만 40년 넘게 정권 또는 정치의 핵심에서 공작정치의 달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끄는 청와대에서 재직한 민정수석비서관이 메모한 내용이 전혀 실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과연 몇 명이 되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법원본부는 “사법권 독립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우려를 표명하는 것으로 지켜낼 수 없다”며 “비망록 속의 내용이 단지 억측에 불과하다면, 법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세력에게 저항하고, 강력하게 규탄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본부는 “대법원은 법관들에게 내부적으로 해명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비껴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전체 국민들에게 이와 관련한 진실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며 “그것만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5천만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 법원본부, 대법관 임명과 관련한 비망록 내용 검토
법원본부는 먼저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업무수첩) 작성 시기에 주목했다.
대법관 임명 관련 비망록 내용이 작성된 시점은 2014년 6월 중순경부터 7월 초순경이고, 2014년 9월 7일 임기가 종료되는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진행될 무렵이었다.
법원본부는 “비망록의 내용은 2012년 8월 안대희 대법관 퇴임 이후 35년 간 유지됐던 검찰 출신 대법관의 명맥이 인천지검장 출신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낙마(위장전임 등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 직전 사퇴)로 끊어지고, 2014년 3월에도 임기가 만료된 차한성 대법관 후임으로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대상자 5명 중 정병두 인천지검장(PD수첩, 용산참사 사건 수사)이 포함됐으나 정치검사라는 딱지가 붙어 제청되지 않음에 따라 검찰 출신 대법관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법원본부는 “비망록 작성 시점에서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적정한 후보자를 찾지 못해 후보 추천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결국 대법관후보자추천위원회는 권순일 법원행정처 차장,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윤남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3인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했고, 양승태 대법원장은 권순일 법원행정처 차장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다.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 내용 중 “법무부 짠 대로 진행되는 인상”, “추천위를 통해서 추진”, “결국 사람이 문제 이번 기회 놓치면 검찰 몫은 향후 구득 난망” 등의 기재에 주목했다. ‘추천위’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말한다.
법원본부는 “이런 음모적 발언 기재와 전체적인 메모의 흐름과 같이 청와대가 잠재적 후보자 본인들의 의사를 타진하고 검증하는 역할까지 진행한 것”이라고 봤다.
법원본부는 “결과적으로 2015년 2월 임기가 만료된 신영철 대법관 후임으로 대법관추천위원회가 박상옥(전 서울북부지검장), 강민구(창원지방법원장), 한OO(법무법인 태평양) 등 3명을 추천했고, 대법원장이 박상옥을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했으며 비망록 속 ‘재야-박상옥(행정원장)’으로 기재된 박상옥이 대법관이 됨에 따라 검찰 출신 대법관을 만들고자 했던 청와대의 작전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법원본부는 “‘추천위를 통해서 추진’하고, ‘법무부 짠 대로 진행되는 인상’을 피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청와대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자행했고,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법원본부는 “위와 같이 사례를 보건데, 현 정권 하에서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 권한 행사가 청와대의 실질적 통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합리적 추론 가능하고, 대법원은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며, 제청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했다면 이 정권의 사법권 간섭 시도에 대한 강력한 항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대법원 조직운영과 관련한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업무수첩) 내용 검토
법원본부는 “업무수첩에는 2014년 3월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유우성) 항소심 재판 진행 중 중국공안당국의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로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할 무렵, 이를 모면하기 위해 직파간첩사건(홍강철)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2014년 9월 1심 재판부는 홍강철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정권의 위기를 벗어나거나 정치적 정적(박원순)을 제거하기 위해 무고한 탈북자를 직파간첩으로 조작했음에도 재판부의 무죄판결에 대해 (청와대는) ‘견제수단이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 ‘법원지도층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국가적 행사 때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 있다는 멘트 필요’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법원본부는 “개별 법관의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법원 전체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법원조직법) 설치 등을 이용해 법원 지도층을 길들이거나 거래하려는 방안이 시도됐다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권력분립(3권)에 대한 이 정권의 천박한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법원과 관련되지 않은 비망록 내용이 대부분 집행되거나 실현됐음을 고려할 때, 이 정권의 법원 길들이기 시도가 있었을 것임이 합리적 추론인데, 법원행정처는 이를 부인하는 것 외에 전혀 반응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업무수첩) 개별 법관에 대한 압력 검토
특히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업무수첩)을 보면 “2014년 9월 22일 법관 - 비위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이라고 적혀 있다.
2012년 12일 제18대 대통령선거일 무렵 국정원은 원세훈 국2정원장의 지시 아래 댓글팀을 운영하는 등 선거에 개입했고, 원세훈 원장은 공직선거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2014년 9월 1심 재판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정치 개입과 관련한 국정원법위반 혐의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선거 개입과 관련한 공직선거법위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는 2014년 9월 12일 이 판결에 대해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내용의 글을 코트넷에 게재하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해, 수원지방법원장(성낙송)은 2014년 9월 26일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징계위는 법관윤리강령 제2조(품위유지의무), 제4조 제5항(구체적 사건에 관한 공개적 논평 금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제3호(구체적 사건에 관한 법관의 공개적 논평이나 의견표명 시 유의할 사항)의 각 위반을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했다.
징계처분 당시 수원지방법원장이었던 성낙송 현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2016년 12월 5일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징계 청구와 관련해 정치적 고려를 하거나 외부와 상의 등 연락한 바는 없었다(한겨레신문 2016. 12. 6.자)”라고 밝혔다.
법원본부는 “하지만 징계위 회부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말하고 김영한 민정수석이 메모한 2014년 9월 22일로부터 4일 후에 이루어졌고 ‘비위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내용이 법관징계법 상 가장 중한 처분인 정직 3개월에 버금가는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음에 따라 실질적으로 직무 배제되는 결과가 이루어졌다”고 반박했다.
법관은 헌법 제106조에 의하여 탄핵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처분을 할 수 없다.
법원본부는 “대법원은 (김동진 부장판사 징계와 관련해) 외압 또는 교감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꼼꼼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정치공작이 없었을 것으로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검찰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명기한 시국선언 등을 이유로 김정훈 전교조위원장 등 3명에게 전례 없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2014년 9월 3일 영장실질심사 후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본부는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 전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조직이 전교조이고, 비망록을 통해 청와대가 전교조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본부는 “전교조 위원장 등에 대한 영장기각 다음날인 비망록 2014년 9월 4일자에는 ‘법원 영장-당직판사 가려 청구토록’으로 기재돼 있고, 이는 몇 명의 영장전담법관 외에 야간ㆍ휴일에 근무하는 당직판사들의 성향까지 파악해 영장 청구시점을 조정하라는 검찰에 대한 지시 내용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