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법원종합청사.(사진=전용모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한다.
피고인은 부산에 있는 부동산개발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주식회사 F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2007. 11. 29.경 피해자(은행) E으로부터 1,600억 원을 대출받으며 피해자와 ‘부산 사상구 C 토지 4,457.87㎡ 등 합계 43,250.97㎡ 상당의 토지 및 그 지상의 건물’(이하 ‘이 사건 각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위 각 부동산을 피해자 명의로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어 위 대출금 변제를 위해 위 각 부동산의 매도를 피해자로부터 위탁받고, 피해자를 위해 보관하게 된 위 각 부동산매도 대금 전액을 피해자 명의로 근질권이 설정된 주식회사 F 명의의 계좌로 입금하기로 하는 내용의 대출약정 등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피고인은 2009. 8.경 불상의 장소에서 ‘부산 사상구 C 토지 4,457.87㎡’ 를 주식회사 D에 대금 62억4120만 원으로 매도하고, 그 대금을 받아 피해자를 위해 보관하던 중, 2009. 8. 28.경 매도 대금 액수를 줄인 위장(이중) 계약서를 작성한 후, 매도 대금 명목으로 52억 원을 위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고, 그 무렵 위와 같이 입금하고 남은 피해자 소유의 매도 대금 10억4120만 원을 임의로 취득하는 등 횡령했다. 피고인은 이를 비롯해 2009. 8. 28.경부터 2012. 11. 20.경까지 위와 같은 방법으로 27회에 걸쳐 피해자 소유의 합계 66억2480만 원을 임의로 취득하는 등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F는 위 각 부동산의 지번별로 이 사건 담보신탁계약의 일부 해지를 요청하고 피해자 E가 이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 담보신탁계약을 합의해지한 후 ‘신탁재산의 귀속’을 원인으로 한 F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F는 2022. 11.23. E에게 이 사건 대출약정에 따른 대출원리금을 전액 변제했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처분한 매도대금은 E의 소유가 아니라 피고인 측에 귀속되는 재물이므로, 피고인은 공소사실 기재 금원을 E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부동산담보대출채무자인 피고인이 채권자인 은행에 부동산을 신탁한 후 이를 매각한 대금으로 대출금을 갚기로 약정하고도 매각대금 일부를 은행에 지급하지 아니한 경우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수는 있지만, 위 매각대금이 은행의 소유라거나 피고인이 은행을 위해 그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의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담보신탁계약에 따라 E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사실, F은 같은 날 E과 사이에 이 사건 질권설정계약을 체결한 후 F 명의의 이 사건 예금계좌를 개설한 사실, 피고인이 이 사건 처분 부동산을 매도한 후 실제 매도금액 중 66억2480만 원을 이 사건 예금계좌에 입금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기재된 횡령 금액, 즉 이 사건 처분 부동산의 실제 매도금액과 이 사건 예금계좌 입금액의 차액 상당의 돈 66억2480만 원이 E소유의 재물이라거나 E과의 관계에서 피고인이 위 돈의 보관자 지위에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F는 이 사건 처분 부동산에 관하여 F가 이 사건 담보신탁계약의 일부 해지를 요청하고 E가 이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 담보신탁계약을 합의해지한 후 이 사건 처분 부동산을 매도했을 뿐, 기록상 E가 F에게 이 사건 부동산의 매도를 위탁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F가 이 사건 담보신탁계약의 해지에 따라 이 사건 처분 부동산의 소유권을 재차 취득한 후 이 사건 처분 부동산을 매도한 이상 그 매도대금 또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처분 부동산의 소유자인 F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실상의 관계에 있으면 충분하고 피고인이 반드시 민사상 계약의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 위탁관계는 사용대차·임대차·위임·임치 등의 계약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한하지 않고 사무관리와 같은 법률의 규정, 관습이나 조리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횡령죄의 본질이 위탁받은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판결 등 참조).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