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걸고 친 ‘내기 골프’는 도박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억대의 내기골프임에도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빚었었다.

이에 따라 적게는 몇 만원부터 많게는 수백 만원까지 판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종종 알려진 가운데, 이들의 내기골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선OO(55)씨와 이OO(63)씨, 김OO(61)씨 등 4명은 2002년 1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제주도에 있는 골프장 등지에서 선씨는 26회에 걸쳐 총 6억원, 나머지 3명은 32회에 걸쳐 총 8억원 상당의 판돈을 걸고 내기골프를 쳤다.

내기골프 방식은 이랬다. 각자 핸디캡을 정해 18홀 중 전반전 9홀까지는 1타당 50만원, 동점인 경우 1타당 100만원, 후반 9홀부터는 1타당 100만원, 동점인 경우는 200만원씩 승자에게 주기로 했다.

또 전반 9홀 게임 최소타 우승자에게는 상금으로 500만원, 후반 9홀 게임 최소타 우승자에게는 상금으로 1000만원을 주기 방식으로 내기골프를 쳤다.

◈ 1심, 이정렬 판사 “무죄”

이로 인해 이들은 상습도박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1심인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2005년 2월 이들 4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아직까지도 귀족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골프경기를 수십 차례에 걸쳐 하면서 경기마다 다액의 재물을 건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도박은 화투, 카드, 카지노 등과 같이 승패의 결정적 부분이 ‘우연’에 좌우돼야 하는데,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에 의해 결정되고,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만 우연이 개입되는 경우에는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내기골프가 도박행위라면 홀마다 상금을 걸고 승자가 이를 차지하는 골프의 ‘스킨스(Skins)’ 게임도 도박이며, 더 나아가 (LPGA 프로골퍼) 박세리와 박지은 선수가 재물을 걸고 골프경기를 하는 경우에도 도박죄에 해당된다고 봐야 하는 불합리함이 발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그러면서 “이와 같이 피고인들이 승패 여부가 그들의 기량과 기능에 주로 지배되는 운동경기인 골프경기를 한 것인 이상 그 승패와 관련해 재물을 걸었다 해도 그것이 도박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 항소심, 무죄 뒤집고 유죄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김용균 부장판사)는 2006년 1월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는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피고인 선씨에게 징역 8월을, 이씨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그리고 나머지 김씨 등 2명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골프는 당사자의 기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기의 일종이지만, 경기자의 기량이 일정한 경지에 올랐더라도 매 홀 내지 매 경기의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며 말했다.

이어 “세계 정상급의 선수라고 하더라도 풍향, 풍속 등의 자연적인 기상변화가 없는 상황에서조차 매 홀 및 매 타의 결과를 그대로 또는 유사하게라도 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경기자가 자신의 경기결과마저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도박죄에서 요구하는 ‘우연’은 당사자 사이에 있어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거나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성질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경기결과를 확실히 예견할 수 없고 어느 일방이 그 결과를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을 때에도 이를 도박죄에서 말하는 우연의 성질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도박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않은 재물의 취득을 처벌함으로써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법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내기골프의 상금은 도무지 정당한 근로에 의한 재물의 취득이라고 볼 수 없고, 내기골프를 방임할 경우 경제에 관한 도덕적 기초가 허물어질 위험이 충분하므로, 이를 화투 등에 의한 도박과 달리 취급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프로골프 선수끼리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 재물을 걸고 내기골프를 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그 직업이나 신분 때문에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그렇다면 내기골프는 도박죄의 보호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도박에 해당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약 1년6월간 전국의 골프장을 찾아다니며, 1타당 최고 수백 만원의 도금을 걸고 수십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골프도박을 한 것으로, 범행의 빈도가 잦고 도박에 걸린 도금이 거액의 규모로서 죄질이 아주 불량하고, 일반 국민들의 건전한 근로의욕을 심대하게 손상시킨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아 엄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피고인들 모두 내기골프에 대해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할 때 사기도박의 범행으로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는 선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이번에 한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 제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최근 선씨 등 피고인들에게 “항소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